차례
프롤로그
폭탄과도 같은 질문
찾아보면 어딘가에 나는 있다? / 내게는 보이지 않는 나의 몸 /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라는 착각 / 여자아이는 ‘여장’을 통해 여자가 된다 / 존재할 수도 있었던 나를 버리는 일 / 거울로서의 타인
나의 안과 나의 밖
자신에게 ‘규칙적인’ 형태를 부여하다 / 나는 무언가를 배제함으로써 ‘내’가 된다 / 과민해진 내 몸의 끝 부분 / 청결 증후군은 백조의 노래인가? / 깨끗한 것은 더럽다 : 똥 이야기
나를 흔들다
작은 불행이 가져오는 행복 / 의식의 감량 밸브를 잠그다 / 나 자신을 이야기하다 / 완벽한 인생 시나리오 / 아이덴티티를 갈아입다 / 성숙하기보다 ‘풋내기’로 / 이해할 수 없고 분명하지 않다는 것 / 나를 잃어도 괜찮다 / 여러 명의 나 만들기 /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다? /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 나는 누구에 대한 타자인가 / 진짜 시나리오, 가짜 시나리오?
타자의 타자라는 것
누군가를 ‘위해 / ‘내’가 강해질 때 / ‘해준다’는 의식 / 자타 관계의 발생 / 타자 안에 자리하지 못한다는 불안 / 자타는 상호보완적이다 / 관계가 자아내는 의미의 실
‘얼굴’을 내민다는 것
유영하는 시선, 엿보는 시선, 회피하는 시선 / 타인의 얼굴 / 성큼 다가오는 얼굴 / 얼굴은 말을 걸고 호소한다 / ‘봉사’ 정신 / 긍정적인 수동 / 멋 부리기 : 타인의 시선을 치장하는 행위 / 사적 생활에 결여된 것은 타인이다
죽은 존재로서의 ‘나’
정말 타자는 존재하는가 / 이름도 호적도 없는 ‘나’의 자유 / 자신이 희미해지는 것에 대한 편안함 / ‘나’를 선언하기 위해 나의 죽음은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의 이야기를 따라
나도 모르던 나의 존재를 생각하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오늘도 길을 헤매는 위태로운 당신을 위한 안내서
“와시다 기요카즈가 말하는, 타자를 향하는 우리의 ‘얼굴’은
타인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 없이 ‘얼굴’을 가질 수 없다.”
_히라노 게이치로(소설가
‘1인 가구’의 증가와 ‘혼밥’의 시대. 수많은 미디어로 ‘나’의 삶을 전시하며 ‘좋아요’를 기다리는 일상. 타인 또는 공동체보다, 나를 위한 개인주의를 선망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회 흐름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타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주장은 의미 있는 것일까? 국가주의나 집단주의에서 비롯된 낡은 주장이라고 비난받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사람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철학을 연구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임상철학가 와시다 기요카즈는 《알 수 없는 나: 나도 모르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에서 크게 두 가지를 주장한다. 하나는 ‘진정한 나’를 자신의 내면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나’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타자를 인식하고 그 타자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
우리들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우리는 타자에 의해 호명되고 사회의 구조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내면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 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나’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타인과 구별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익명성 안에 나를 숨기고, 사회의 축을 공유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느끼는 우리. 사회 안에서 영원히 ‘타자의 타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나’를 알고 싶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내’가 아니라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