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절대로 얼버무려서는 안 되는 것
: 불교의 ‘방향’
불교는 ‘올바르게 사는 길’?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
노동(production의 부정
마간디야의 딸
생식(生殖, reproduction의 부정
흐름에 거스르는 것
재가자(在家者에 대한 가르침의 성질
절대로 얼버무려서는 안 되는 것
이 책의 입장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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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불교의 기본 구조
: 연기(緣起와 사제(四諦
‘전미개오(轉迷開悟’의 한 가지 의미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맹목적인 버릇을 멈추게 하는 것이 ‘깨달음’
의지해서 생기는 것
기본적인 큰 줄기
고(苦와 무상(無常
무아(無我
가면(假面의 예속(?屬
혹업고(惑業苦
사제(四諦
불설(佛說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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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탈선악(脫善惡’의 윤리
: 불교에서의 선과 악
명상으로 인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선(善도 악(惡도 버리기
명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십선십악(十善十惡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
소박한 공리주의(公利主義
유루선(有漏善과 무루선(無漏善
사회와 대립하지 않기 위한 ‘율(律’
‘탈선악(脫善惡’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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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지 않고
: ‘무아(無我’와 윤회
‘무아(無我’라고 말은 하지만
‘무아(無我’의 ‘아(我’는 ‘상일주재(常一主宰’
단견(斷見도 아니고 상견(常見도 아니고
붓다의 ‘무기(無記’
‘엄격한 무아(無我’도 ‘비아(非我’도 아니다
무상의 경험아(經驗我는 부정되지 않는다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윤회한다
‘무엇
불교를 수행하는 목적, ‘착하게 사는 길?’
‘행복에 이르는 길’,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 …
명상을 비롯해 불교 수행을 하는 이들의 목표를 물으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불교의 개조(開祖인 고따마 붓다에게는 그런 게 아니었다. 붓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수행 목적은 ‘해탈(解脫’이며 또 그것을 달성한 경지인 ‘열반(涅槃’이었다. 통상 ‘깨달음’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 유달리 명상의 ‘효과’들이 강조되면서 불교 수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을 달성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담론은 먼 나라 이야기다. 심지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불교는 자기계발이나 처세에 동원되기도 한다.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본래 목적인 깨달음이라는 목표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애당초 ‘과학성’과 ‘합리성’을 바란다면 불교 관련 책보다는 자연과학 관련 책을 읽으면 되고, ‘처세술’을 알고 싶다면 2,500년 전의 인도인이 현대인의 상황에 딱 맞게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훨씬 참고가 될 것이다. 속세의 처세가 불교의 문제였다면 수천 년의 시간과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왔을 리가 없으며, 과학성과 합리성이 불교의 특장(特長이라고 한다면 그 점에 관해서는 근대과학 쪽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구태여 불교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다시 질문한다. 불교 사상의 제로포인트인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해탈-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맹목적인 버릇을 멈추는 것
사실 해탈-열반의 경지가 애매한 형태로밖에 묘사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경지가 언어를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탈-열반 그 자체에 대해서 언어로 완전하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성질이나 그 경지를 달성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