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art 3. 예루살렘으로의 여정
35. 모든 것을 밝히 보게 하소서 막 8:22-33
36. 자기를 부인하려면 막 8:34-9:1
37. 무엇을 위한 체험인가 막 9:2-8
38.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막 9:9-13
39. 신앙생활이 점점 버거워질 때 막 9:14-29
40. 비교하지 말고 집중하라 막 9:30-37
41. 우리를 위하는 자를 품으라 막 9:38-50
42. 난 너무 이기적입니다 막 10:1-12
43. 난 왜 저 인간이 싫을까? 막 10:13-16
44. 일은 왜 하는가 막 10:17-22
45.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막 10:23-27
46. 성도의 존재감 막 10:28-34
47. 다른 심장으로 살라 막 10:35-45
48.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46-52
Part 4. 예루살렘 입성과 심판 선언
▶ Section 1. 예루살렘 입성과 대결
49.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막 11:1-11
50. 신앙은 열매로 드러난다 막 11:12-25
51. 권위적인 나, 권위적인 주님 막 11:27-33
52. 농부의 착각 막 12:1-12
53. 스파이더맨이 피곤한 이유 막 12:13-17
54. 부활의 언어로 성경 바라보기 막 12:18-27
55. 듣고 이해하고 물으라 막 12:28-34
56. 더 깊이 알아야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 막 12:35-37
57. 전부를 넣었느니라 막 12:38-44
▶ Section 2. 성전멸망 선언
58.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막 13:1-13
59.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인가 막 13:14-20
60.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막 13:21-23
61. 인자의 오심? 인자의 가심! 막 13:24-27
6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막 1
<책 속으로>
“‘사탄’은 문자적으로 ‘대적하는 자’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씀은 이중적 의미다. 한편으로는 ‘너는 나를 반대하는 자구나!’라는 뜻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의 그런 이기적인 마음 뒤에 역사하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고백까지 했다. 그런데 자기가 고백한 그리스도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그런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래서 참된 메시아의 길인 수난과 모욕과 죽음의 길 앞에 도리어 발끈하며 예수님을 따로 붙들고 가서 꾸짖었다. 그만큼 베드로의 자아는 펄펄하게 살아 있었다. 자기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과도하고 무모한 확신 속에 ‘지금 선생님께서 이러시면 안 된다’라고 따로 붙잡고 나가 스승을 혼낼 정도다. 이런 것을 보면 베드로는 입술로는 주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했지만 아직 맹인이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길을 가셔야 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베드로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베드로의 영적 메타인지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베드로의 영적 시력은 아직 온전하지 못했다.”
25쪽 35. 모든 것을 밝히 보게 하소서 중에서
“‘연자맷돌’(헬. 뮐로스 오니코스은 직역하면 ‘나귀의 연자맷돌’이다. 이것은 사람이 돌리는 연자맷돌이 아니라 나귀가 돌리는 커다란 연자맷돌을 말한다. 이렇게 큰 돌을 목에 매달고 빠지면 나올 수 없다. 예수께서는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작은 자’는 제자들이 티격태격하면서 싸울 때 누가 크냐, 누가 작냐, 할 때의 작은 자를 말한다. 이는 객관적으로 작은 자가 아니다. 우둔한 자기 판단으로 볼 때 작은 자를 말한다. 제자들은 이미 그 마음에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자’보다 자신들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큰 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연수는 길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