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영웅의 출현, 거처를 세 번 옮겨 위대한 장군을 탄생시키다 _4
1부
덕수 이씨 가문의 서울살이
- 자식의 앞날을 준비하기 위한 고달픈 도성 살림_17
모친 변씨가 본 아들 이순신의 장점_22
가족 사랑과 책임감_30
모친의 기대, 건천동에서 쌓은 인맥과 우정_31
5대조 대제학 이변의 후광_37
호랑이 장령 증조부 이거의 명성_41
을묘사적과 거리가 멀어_44
조부 이백록, 가문에 평지풍파를 불러오다_48
정치적 소용돌이를 피한 이주_55
탈출구가 없는 살림
- 녹봉 없는 양반 가문, 모친의 고단한 서울살이_59
1부 정리편_64
2부
가문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다_69
양반가에 떠도는 소문을 지워버리자_73
덕수 이씨 못지않은 변씨 가문 이야기_76
아산 이주에 대한 시기 특정_78
외가에 내려온 무인의 피_93
아산 낙향의 장애물 ‘문무과 급제의 낮은 확률’_94
과연 영의정 이준경이 중매를 섰을까?_96
옹졸한 선조, 정도를 가르친 이준경, 대범했던 이순신_99
이준경·방진·정걸의 인연이 만든 영웅_105
방진의 든든한 후원도 큰 몫_108
모친 변씨의 재무관리, 〈별급문기〉_111
모친, 이순신의 기둥으로 스승이 되다_120
모친과 순신의 대쪽 같은 성격_121
이순신에게 전해진 가문의 가르침_124
《난중일기》에 드러난 모자간의 사랑_125
2부 정리편_133
3부
여수 송현동에서의 마지막 여정_139
편암함을 물리치고 애써 아들 곁으로_143
정대수 가문의 후원과 지지_154
서로 못 보고는 못 사는 각별한 애정_159
“아들이 기쁠 수만 있다면…”_161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_162
나 없는 세상을 살아갈 아들에게_171
정유년(1597, 운명의 날이 다가오다_184
구명 작전, 충신들이 나서다_190
죽음이냐 생환이냐_194
형평이 맞지 않은 형편없는 처벌 _197
신구차를 올린 노신의 지혜_200
아들을 살리려면 내가 죽
꿋꿋하게 가문을 지키고 자식의 장래를 준비한 당찬 여장부
변씨는 이순신을 영웅으로 키우고자 세 곳의 거처에서 자녀를 가르치고 길러냈다. 서울의 거처였던 건천동은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든 동학과 가깝고, 무과생들을 위한 훈련원과도 가까워 자식을 교육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조부와 남편이 벼슬에서 멀어지면서 가세가 기울고 자식들의 입신출세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생기자, 변씨는 가솔 전체를 이끌고 서울에서 아산으로 이사를 단행했다. 또 덕수 이씨는 대대로 문인 집안이었지만, 친정인 변씨 집안의 도움과 영향으로 순신의 학업을 무과로 바꾸게 하는 등 치밀하게 장래를 준비했다.
또한 변씨는 이순신이 1576년 무과에 급제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노비와 토지를 증여하면서, 재산을 분급한 내역을 꼼꼼히 기록하는 〈별급문기〉를 손수 시행하여 발급했다. 또 혹시라도 자손들 사이에 재산 분급을 둘러싼 분쟁이 생길 소지를 없애기 위해 증인을 세우는 등 철저한 재산관리 의식을 보여준다.
이후 집안의 화재,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을 차례로 맞으면서도 변씨는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문을 지켜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는 이순신을 정신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아산에서 홀로 여수 고음내로 이사를 단행한 후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했고, 충무공의 전란 극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 모친을 잠시 찾아뵈러 온 이순신이 아침을 들고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타일렀을 정도로 당찬 여장부였다.
영웅을 만들어낸 영웅의 어머니
이러한 변씨의 가르침은 평생 장군의 자립, 자주, 충성의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변씨의 뱃길 상경이다.
충무공이 모함을 받아 선조로부터 밉보여 파직당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변씨는 83세의 병든 몸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배를 타고 상경하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상경하기 전 극구 말리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내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