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자본주의 이전 사회, 조선
제2장 악화(惡貨 발행해 백성 등쳐먹다 자멸
제3장 영국군 거문도 철수
제4장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의 충격
제5장 청나라와 전쟁 준비에 돌입한 일본
제6장 일본과 청나라, 해군력 건설 경쟁
제7장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의 최후
제8장 조선은 ‘홉스적 자연 상태’
제9장 동학의 탄생
제10장 동학 농민군 봉기하다
제11장 관군에 승리한 동학 농민군
제12장 동학에 대한 과장된 신화
제13장 일본 낭인, 조선에 오다
연표
참고문헌
동학농민운동의 물결이 휩쓴 한반도
일본의 한국 지배 시작되다
그러나 외세에 휘둘리는 상황에서 내정 역시 제대로 추스를 수 없었다. 정권을 잡은 민씨 척족은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고, 다른 관리들이 이를 따라 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은 악명이 높았다. 백성들을 동원해 멀쩡한 보 아래에 새로운 보를 만들게 하고는 물세를 받아내기까지 했다. 농민들이 들고일어났고, 그 주축은 당시 확산되고 있던 동학교도들이었다.
동학은 봉건적인 신분제를 부정하는 등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급격히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 동학은 창시자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처형당한 뒤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한 집단행동으로 조직화돼 있었다. 봉기의 지도자 전봉준은 이 조직을 이용했다. 봉기의 물결은 금세 한반도 서남부를 휩쓸었다.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었던 조정의 결론은 역시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임오군란 때 청군 파병을 요청하고 갑신정변 때 주둔 청군의 지원을 받았듯이, 다시 청군 파병을 요청했다. 청군이 들어오면 일본군도 들어오도록, 그들끼리의 협정에 규정돼 있었다. 청은 봉기가 일어난 지역을 향해 아산만 쪽으로 군대를 상륙시켰지만, 일본은 청보다 많은 병력을 서울로 보냈다. 불순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이 결국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과 전쟁을 벌였다. 동학 농민군은 해산했지만, 의도하지도 않았던 청-일 양국의 전쟁을 불러일으킨 도화선이 된 셈이었다.
한편 이 시기를 전후해서 일본의 대륙 진출의 첨병인 낭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낭인은 일본의 새로운 체제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세력들로,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해야 자신들이 활동할 발판이 만들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비공식적인 신분으로 첩보 활동 등 침략의 기반 조성 사업을 하며 일본 당국을 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제작을 도운 것도 그런 사람들이었으며, 다음 시기 민 왕후를 살해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