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
갯벌에 선 남자
Horse Riding
나는 잘 있다
고송리 가는 길
낮잠
이마도 낙원으로부터
Text
화가의 자화상
신세계는 없다 그저 사람이 있을 뿐
There Is No New World, But Only Life
이것이 최석운이다
해학적 세계의 깊이와 자유로움
자존의 길
개성과 표현
최석운의 해학과 풍자정신
단순하고 명쾌한 자기고백
최석운-심각한 풍자
작가 인터뷰
프로필
지금까지 작가의 그림에는 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그림들도 있었다. 어쩜 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던 작가의 무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나 보이면서 보다 적극적인 형식을 얻는 경우의 그림들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무의식이 보아낸 삶은 공허하거나 죽기 아님 살기다. 해학적인 그림이 설핏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래도 삶은 대개 치열하고(차라리 처절하고, 잘해야 공허하다. 삶의 실상이 꼭 그렇지가 않은가. 너무 비관적인가. 밀란 쿤데라는 느끼는(그러므로 겪는 사람에게 삶은 비극이고, 보는(그러므로 관조하는 사람에게 삶은 희극이라고 했다. 이처럼 웃기지도 않은 삶의 실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만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초상이 오롯하다. 마치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연대기를 테마로 한 상황극을 보는 것 같은, 연극적이고 서사적인 부분이 있다. 삶의 실상을 축도해 놓은, 삶의 메타포로 볼만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소시민적인 생활 풍속도로 부를 만한 부분이 있다. 그들의 삶은 비록 대개 치열하고 잘해야 공허하지만, 그래도 그 삶을 향한 작가의 눈빛만큼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다.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론적 연민이 있다. 그 연민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 웃음이 위로가 되는 그런 힘이, 작가의 그림에는 있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신세계는 없다, 그저 삶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