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장 고려양, 고려 스타일
1. ‘고려 스타일’, 몽골에서 유행하다
1 ‘고려 스타일’ 복식의 유행
2 고려양과 몽골 복식
3 ‘고려 스타일’은 다양하니
2. 원 말기의 궁정, ‘고려 스타일’ 유행의 기폭제
1 고려양과 기황후
2 기황후, 권력의 정점에 서기까지
3 다시, 기황후와 고려양. 그리고
2장 고려와 몽골의 관계 속에서 몽골에 간 고려인들
1. 예케 몽골 울루스의 확장과 고려, 고려인
1 전쟁을 거치며 국적을 바꾸다
2 왕과 왕자를 따라갔다가
2. 내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1 몽골에 간 고려 여성들
2 원 궁정의 고려 ‘남성’들, 환관
3장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 스스로 국경을 넘은 고려인들
1. 제과(制科에 급제하기 위해서
1 제과에 응시한 고려인들
2 제과에 급제하기까지, 제과에 급제하고 나니
2. 신앙은 국경을 넘어
1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2 황제의 부름을 받고
3 나와 우리의 사찰을 위해
3. 세계 교역의 시대, 『노걸대』와 『박통사』
1 『노걸대』, 키타이인과 함께한 고려 상인 이야기
2 회회아비가 운영하는 개경의 만두집, 「쌍화점」
참고문헌
-편집자의 말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중국이 러시아에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소문은, 근거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민족’이라거나 ‘원래 정당한 옛 영토 수복’, ‘나토의 동진 위협’ 등이었다. 급기야 이런 명분들이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모자라 보이자 ‘우크라이나는 나치’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한 민족’이라는 명분에 의한 병합, ‘고토수복’, ‘생존권’ 타령이 오히려 그 ‘나치’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차치하도록 하자. ‘고토수복’이라는 명분에 대해 사람들은 ‘몽골군 캬흐타 근처 배치’와 같은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몽골인들이 수십 년간 루스인들을 지배한 ‘타타르의 멍에’가 떠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칭기즈칸의 등극과 함께 성립된 예케 몽골 울루스, 즉 몽골 제국은 세계로 뻗어 나가며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고, 그중에는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몽골 제국 간의 관계는 제외하고, 고려와 몽골 간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피지배의 이분법만으로 보기에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복잡다단하다. 고려의 왕실은 몽골 황실의 부마로서 부마국의 지위를 누렸고, 쿠릴타이에 고려 왕이 참가하기도 했으며, 발언권이 아주 약한 편도 아니었다. 수많은 고려인이 몽골로 끌려가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자발적으로 몽골에 간 고려인도 있었으며, 몽골을 통해 얻은 권력으로 패악질을 벌이는 부원배도 있었지만, 고려에 도움이 되는 간언을 한 몽골 관료도 있었다. 몽골은 세계제국이었으며, 그 세계제국에서 무역하며 이득을 본 고려의 상인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복잡한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 중에는 힘겹고 슬픈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몽골은 고려를 침략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수많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