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하나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배낭 메고 모자 쓰고, 먼 길인 듯 양손으로 등산스틱을 짚으며 걷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여행자는 말이 없고, 화자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고, 그저 묵묵히 그 풍경을 그렸을 뿐.
“왈!” 강아지 한 마리 나타나 동행을 청합니다. 뚜벅뚜벅 타박타박, 발소리는 이제 둘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길이 이어집니다. 탁 트인 들길, 서늘한 숲길, 아슬아슬 징검돌 밟으며 개울을 건너는 길....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때론 마주 오는 여행자에게 손 흔들어 주며 걸어갑니다. 노을 지고 땅거미 내려 다리가 지치면 모닥불 피워 차 한 잔 나눠 마시고, 동이 트면 툭툭 털고 일어나 이른 아침 안개 속을 걸어갑니다.
어디쯤에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 왈!” 강아지 소리 작아졌습니다. 동행은 거기까지, 둘은 잠시 눈빛을 나눈 뒤 서로를 따뜻이 안아 주고 저마다의 길을 갑니다. 뚜벅뚜벅, 다시 혼자가 된 발소리. 그러나 우리의 여행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노란 빛 가득한 해바라기 밭 사잇길, 저 끝에 푸른 바다가 열려 있습니다.
이 묵묵한 여행 이야기가 말없이 건네는 말은 무엇일까요? 여행과 삶의 비유는 너무나 흔해서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흔한 데에는 흔할 만한 까닭이 있을 겁니다. 이러하고 저러한 길을, 만나고 헤어지며 걸어가는 여행의 서사는 자연스레 희로애락과 상봉별리 이어지는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묵묵한 여행’은 ‘묵묵한 삶’의 은유일 법하겠습니다.
책 속의 여행자는 묵묵합니다. 말도 표정도. 발걸음 또한 서두름이나 늦춤 없이 꾸준합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 세차게 부는 바람... 당황할 만한 상황을 만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힘들고 지치면 쉴 자리를 찾아 차 한 잔을 길동무와 나눠 마실 뿐. 만남과 헤어짐조차 묵묵합니다. 홀연한 동행을 선선히 받아들였던 것처럼 예고 없던 이별도 담담히 받아들이지요. 그리고 다시 뚜벅뚜벅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