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천교 아래, 파란 반도단에서 길러진 아이
다리 위가 해가 비치는 양지라면 그늘진 다리 아래는 음지의 세계였다. (본문에서
노미는 네 살 때 염천교 아래 버려진 후 파란 반도단 무리에서 자랐다. 정확히는 벅수 누나가 엄마처럼 노미를 거두어 먹였다. 노미는 파단 반도단의 표식인 파란 줄을 얻고 정식 일원이 되기 위해 소매치기 ‘일’을 성공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쇠심줄은 패거리가 훔쳐 온 물건들을 다시 착취하며 일원들이 패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협박을 일삼는다. 네 살이어서 네사리, 다섯 살 때는 다섯사리, 결국 이놈 저놈으로 불리다 ‘노미’라는 이름을 갖게 된 소년은 비록 잘못된 길이지만, 자신에게는 유일한 그 세상을 지키기 위해 조선 최고의 소매치기가 되기를 꿈꾼다.
◆ 잘못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급한데 너무 멀어요.”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돼? 그리고 멀어도 가야 할 길은 가야지.” (본문에서
벅수는 노미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남의 것을 훔쳐야 하는 음모와 불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벅수 누나는 노미가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노미를 바라보는 벅수의 눈에는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너만은 그 길을 가지 말라고, 소매치기하려는 노미를 저지하며 화를 낼 때에도 노미는 그 안에 담긴 다정한 눈빛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노미는 벅수 누나에게서만 보았던 그 눈길을 바깥에서 우연처럼 자꾸만 마주치게 된다. 공동변소로 가는 길이 멀어서 누구나 그러듯 노상방뇨를 하려던 노미에게 고보 형은 “멀어도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괜한 참견으로 들릴 법도 하건만, 난생처음 들어 보는 ‘사람답게’라는 말은 노미의 마음을 쨍하게 울린다. 뜻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는 형의 눈빛은 그 말이 옳다고, 형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 아무렇게나 지어진 이름을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