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무미랑
무측천은 14세에 당태종 이세민의 여자로 입궁했다. 당태종에 의해 정5품 재인으로 책봉되어 무미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사람들에게 미낭이라고 불렸다. 아무런 존재감 없이 당태종 아래에서 11년을 보낸 무측천은 당태종 사후에 비구니가 되었다. 비구니가 되는 것은 운명이었지만 무미낭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미낭은 훗날 고종이 된 당시 태자 이치에게 팔을 뻗어 자신의 운명을 바꿨다.
고종의 눈에 무미낭이 들어왔다. 하지만 무미낭은 선제의 첩인 데다 출가한 비구니였으니 제아무리 황제라도 예법을 따라야 했고 명분이 필요했다. 명분을 만들어줄 사람은 왕王황후였다.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숙비蕭淑妃만 헤아리는 이치를 고칠 방법으로 황후는 계책을 세운다. 황제와 정을 통한 비구니, 무미낭을 궁에 들여 소숙비를 내쫓을 계책. 왕황후의 계획으로 무미낭은 성공적으로 재입궁했고 무미낭은 종국에 황후 자리까지 꿰차게 된다.
“당시 이치는 태자의 신분으로 어전에서 직접 탕약 시중을 들었으며 무미는 재인으로서 음식과 일상을 책임졌다. 두 사람은 빈번히 마주치다가 시간이 가다보니 정이 생겼거나, 첫눈에 반했거나, 몰래 마음이 맞았거나, 심지어 몸을 섞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다 가능했다.” _29쪽
고종 이치, 무측천 정치의 시작
무측천이 자신의 정치적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남편 이치에게 있었다. 희대의 명군 당태종은 빛나는 성취를 이뤘고 백성은 풍요로웠고 나라는 강력했다. 고종은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성과를 누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으나 잘하면 선제의 덕이고 못하면 자신의 무능이 되는 선제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후궁에서는 저마다의 싸움에 정신이 없었고 권신은 고종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에 불과했다. 심지어 선제 때부터 조정을 드나든 권신은 황제를 어린아이 취급했으며 공공연하게 부패를 저질렀다. 후궁도 권신도 모두 골칫거리인 상황에서 고종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곤궁에서 끄집어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무측천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