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 순결한 말들이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주기를…
나치 때문에 벌어진 내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은 복잡했다. ‘검은 셔츠단’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킨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독재 체제를 구축한 후 독일, 일본과 손잡고 추축국이 되어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이 소련에 패배하고 같은 해 7월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상륙하면서 본토 침공이 가시화되자 무솔리니는 얼마 못 가 실각하고 만다. 9월 8일,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맺게 되는데 이 일이 있은 직후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도움을 받은 나치 독일 군대가 국경 내부로 들어와 이탈리아 북부를 장악하게 된다.
이탈리아 북부를 차지한 나치 독일은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수립하고 무솔리니를 구출해 내 공화국의 수반으로 앉힌다. 이 시기 몇몇 이탈리아 군대들은 연합국의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상당수의 이탈리아 군대는 여전히 무솔리니와 독일에게 충성을 바쳤고,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편에 서서 연합군에 대항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남부와 파시스트들이 장악한 북부 사이에서 전쟁이 계속되며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이
름 없는 민중들이 일어서다
이 시기를 전후로 이탈리아 각지에선 북부의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군대와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기 위해 다양한 파르티잔 그룹들이 생겨났다. 이후 각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저항 그룹들이 연합하여 ‘이탈리아 해방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여기엔 공산당, 사회당, 행동당, 기독교민주당, 자유당, 노동민주당 등이 모두 참여했다. 또한 휴전 협정 이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반파시즘 분위기가 이탈리아 사회 전반으로 펴져 나가 수많은 시민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
1945년 4월,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무솔리니는 북쪽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나, 결국 파르티잔들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짧고 소박하기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