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자형(字形과 고대문자학, 그리고 고대인의 생활과 의식에 기반한 새로운 한자학 제시
그렇다면 갑골문의 발견이 왜 지난 2,000여 년의 권위를 지닌 『설문해자』의 위상을 뒤흔들게 되었을까? 한자는 형(形, 음(音, 의(義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문자이다. 『상용자해』의 저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에 따르면, 한자는 알파벳과 달리 말을 표기하는 음성 기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형(形 중심의 문자로 발전되어온 것이어서 자형(字形 중심으로 글자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한다. 음이 같으면 같은 뜻이라는 식의 음의설(音義說은 어원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한자학의 방법으로서는 신뢰하기 어렵고, 한자는 형, 음, 의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지만 성립기의 한자는 표음(表音보다는 표의(表意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형태가 있는 이상 음으로 불린 것은 당연하지만, 표음보다 표의가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형(字形 연구에 있어 갑골문의 발견과 갑골문과 금문 해석을 통한 원초적 한자의 의미를 살리는 데 『설문해자』는 결정적 흠결 ― 시라카와는 “허신이 옛 자형의 갑골문자나 금문을 볼 수 없었고, 자료로 삼은 자형이 최초의 모양을 잃어버린 것이 많다는 점도 그 원인의 하나”로 보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글자의 초형이 명확하지 않고, 또 무엇보다도 한자가 성립한 시대에 관한 고대학적 지식의 결여가 자형의 해석을 그르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 을 지니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시라카와 시즈카는 矢(시는 ‘맹세하다’라고 읽는 글자인데, 『설문해자』에서는 矢를 상형(象形이라 보는데, 왜 ‘맹세하다’인지, 知(지와 智(지가 왜 矢를 글자의 요소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고 비판한다. 또한 矢가 도달하는 지점을 보이는 것은 至(지인데, 옥(屋, 실(室, 대(臺가 왜 至를 글자의 요소로 하는지에 대해서, 세 글자가 같은 계열의 글자임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이르다(至라는 뜻으로 해석할 뿐이라고 재차 비판한다. 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