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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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한국 목간 분포 현황
Ⅰ. 낙랑(樂浪
개요
1. 평양 석암리 194호분 출토 죽간
2. 평양 남정리 116호분 출토 목독
3. 평양 정백동 3호분 출토 목간
4. 평양 락랑동 1호분 출토 목간
5. 평양 정백동 364호분 출토 간독
Ⅱ. 백제(百濟
개요
1. 부여 구아리 319번지(중앙성결교회 출토 목간
2. 부여 관북리 출토 목간
3. 부여 궁남지 출토 목간
4.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 목간
5. 부여 쌍북리 뒷개 유적 출토 목간
6. 부여 쌍북리 현내들 유적 출토 목간
7. 부여 쌍북리 56번지(사비한옥마을 유적 출토 목간
8. 부여 쌍북리 102번지(쌍북아파트 유적 출토 목간
9. 부여 쌍북리 173-8번지(119안전센터 유적 출토 목간
10. 부여 쌍북리 184-11번지(부여 사비 119 안전센터 유적 출토 목간
11. 부여 쌍북리 280-5번지(신성전기창고 유적 출토 목간
12. 부여 쌍북리 201-4번지(농업시설 유적 출토 목간
13. 부여 쌍북리 328-2번지(단독주택 유적 출토 목간
14.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출토 목간
15. 금산 백령산성 출토 목간
16. 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목간
17. 정읍 고사부리성 출토 목간
18. 부여 동남리 216-17번지(개인주택 유적 출토 목간
Ⅲ. 신라(新羅
개요
■ 왕경 출토 목간
1. 경주 월성해자 출토 목간
2. 경주 월지(안압지 출토 목간
3. 경주 황남동 376번지 유적 출토 목간
4. 경주 傳인용사지 출토 목간
5.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출토 목간
6.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남측부지(영남권수장고 동쪽부지 유적 출토 목간
7. 경주 황룡사 남측 도로(남측 담장 외곽 정비사업부지 유적 출토 목간
8. 경주 傳황복사지 출토 목간
■ 지방 출토 목간
9.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
10. 경산 소월리 유적 출
이 책은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원류와 지적 네트워크 연
구’의 1단계 사업의 성과로 간행되는 동아시아 목간 총람중 한국 목간 편이다. 여기에 수록된 목간은 2021년 말까지 발굴과 사후조사 등을 통해 알려진 것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낙랑의 간독자료부터 백제와 신라(통일신라 포함, 고려와 조선시대 및 원대(신안선 목간의 자료까지 포함하여 시대순과 국가별로 38개 유적에서 출토한 1,100여 점의 목간들을 대상으로 서술하였다.
목간은 公私의 의지 혹은 정보 전달 등을 목적으로 나무조각[木片]에 문자를 기록한 것이다. 고대 동아시아지역에서 書寫재료로서 나무를 이용하는 방법은 중국에서 기원하였다. 중국에서는 竹簡·木簡을 비롯한 붓과 먹 등의 文房具類가 戰國時代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秦漢시대에 이르러 국가행정의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다가 이후 종이의 개량과 보급에 따라 점차 서사재료로서의 주도적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렇듯 나무를 서사재료로 이용한 문자문화의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지만, 고대 한국의 문자 사용과 목간문화의 기원 및 전개는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고대 한국에 중국의 간독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계기는 前漢 武帝가 古朝鮮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서북부에 郡縣을 설치한 이후라고 생각된다. 樂浪을 비롯한 군현의 설치는 중국 내지에서와 같은 문서행정에 기반한 군현제적 지배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였으며, 처음 한사군을 설치할 때 군현의 屬吏를 遼東郡에서 충원하였다는 것은 군현 지배를 뒷받침하는 간독의 문서행정 시스템을 바로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평양의 채협총 출토 목간과, 정백동 364호분 출토 樂浪郡 戶口簿 木牘·『논어』 編綴竹簡, 낙랑 유적에서 출토한 封泥와 印章, 문방구류 등의 문자 유물의 존재는 이같은 의도가 현실에서 구현되었음을 의미한다.
낙랑군의 간독과 문자유물의 존재는 고대 한국에 중국의 간독문화가 그대로 유입되어 수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한국의 목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