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개관
제1부 영사재판(1907
제1장 통감부의 배설 추방과 신문 폐간 요구
1. 처벌 증거 기사 3건 제시
2. 재판 소환장
3. 총영사 코번의 영사재판
4. 논설 영문 번역은 정확한가
제2장 6개월 근신형 판결
1. 의병의 무력 항쟁은 신보의 선동 탓
2. 반일감정이 신문 때문인가?
3. 배설의 신문은 공안을 해칠 우려
4. 신문지법 제정
제2부 상하이 고등법원 재판(1908
제1장 영국과 통감부의 재판 준비
1. 상하이 고등법원 판사가 서울로
2. 일본은 정치적?·?행정적 처리요구
3. 서울프레스 배설 공격 캠페인
제2장 재판 제1일 : 6월 15일(월
1. 재판 절차의 정당성 논쟁
2. 치외법권의 상황논리
3. 변호인의 법리논쟁
제3장 재판 제2일 : 6월 16일(화
1. 배설의 증언?신보의 경영과 논조
2. 양기탁의 증언?논설의 취지 진술
3. 변호인의 무죄 주장
제4장 재판 제3일 : 6월 17일(수
1. 신보를 구독하는 배설 측 증인들
2. 논설 세 건에 대한 논리적 변론
3. 변호인과 검사의 치열한 논쟁
4. 재판 제4일 : 6월 18일(목
제3부 국채보상운동 양기탁 재판
제1장 프레스 캠페인 국채보상운동
1. 언론사, 민족운동사, 외교사와 총체적 연관
2. 국채보상운동의 전개와 언론
3. 언론의 반응
4. 모금액 총계
5. 일본의 탄압 영국과의 갈등
제2장 양기탁 재판
1. 사법권 탈취 이후 첫 재판
2. 재판 제1일 : 8월 31일(월
3. 재판 제2일 : 9월 3일(목
4. 재판 제3일 : 9월 15일(화
5. 재판 제4일 : 9월 25일(금
6. 재판 제5일 : 9월 29일(화
7. 통감부 공판기록 요약 정리
제3장 국채보상운동의 결말
1. 애국심이 결집된 고혈
2. 의연금은 총독부가 몰수
제4부 배설의 N-C 데일리 뉴스 명예훼손 재판
제1장 일본 신문의 배설 공격
1. 배설의 신변 위협
2. N-C 데일리 뉴스의 오보
3
재판정의 영국, 일본,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
복잡한 논의와 영-일 간의 외교 교섭의 결과, 통감부가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영국은 배설을 두 차례 재판에 회부했다.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 검사와 판사가 서울에 와서 4일 동안 진행한 재판에는 피고 배설과 일본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위임을 받아 고소인 자격으로 참석한 통감부 제2인자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 평민 등 실로 당시 한반도의 정세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출두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과 민족언론의 항일 기사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영어 통역은 미국 유학을 마친 김규식(金奎植이 맡았는데, 후에 정치가로 널리 알려지는 인물이다. 한영 통역을 맡았던 일본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는 ??조선의 판본(板本??이라는 책을 쓴 서지학자이자 중세국어학 연구자였다.
한국과 일본의 비상한 관심 속에 영국의 재판관들이 진행하였으므로 영ㆍ일ㆍ한 세 나라가 관련된 이 진귀한 재판은 영국과 일본이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침략정책에 어떤 방침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보여준 거대한 역사 드라마였다. 재판 3건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국채보상운동 재판은 일본어였다. 한국에서 진행된 국제재판의 특이한 풍경이었다.
국채보상운동 재판
통감부가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혐의로 구속하여 영-일 두 나라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었던 재판사건은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한 다음에 진행했던 최초의 재판으로, 일본인 재판관 2명과 한국인 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양기탁 재판은 신보와 배설 탄압의 연장이었지만 특히 당시 전국적인 프레스 캠페인으로 불붙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키려는 통감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기에 항일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영국인, 일본인, 프랑스인과 미국인이 증인으로 나서 증거를 제출하는 등 다국적 재판이 되었다.
상하이에서 열린 명예훼손 재판
상하이에서 열린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재판이 있었다. 상하이 발행 영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