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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근대도시 공주의 탄생 :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공주 이야기
저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출판사 (주메디치미디어
출판일 2021-12-30
정가 15,000원
ISBN 979115706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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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장 감영에서 도청으로
호서의 중심도시에서 충남의 중심도시로: 공주목·공주부·공주군, 지방행정체제의 변화
8도제의 해체와 23부제/ 호서지역의 3부, 공주·홍주·충주/ 지방행정체제의 골격 13도제
이방인들과 함께 온 근대: 공주의 일본인과 서양인들
일본 속의 공주, 공주회/ 80만 명의 재조 일본인/ 일본인의 공주/ 거리에서 전파된 근대의 개념들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도청 이전: 도청 유치운동과 이전 반대운동
신경과민으로 보였던 이전 예방운동/ 야망의 크기; 조선총독부 일대 스캔들/ 교통의 변화가 핵심이다/ 교육도시, 문화도시라는 대안

2장 공주도 철도를 원했다
사라진 가능성, 경부선 공주역: 국가 간선철도가 공주를 비켜 가다
도로, 사람과 물자가 오고 가는 길/ 공주를 지나는 조선의 대로/ 국가의 경사가 된 경부선 개통/ 경합하는 경부선 노선들/ 어쩌면 가능했을, 경부선 공주역
100년 후에야 실현된 호남선 공주역: 호남선도 공주를 비켜 가다
경영자와 군부, 서로 다른 목소리/ 대륙행 간선철도/ 호남선 철도는 한국인의 힘으로/ 너무 늦은 도착
공주는 계속 철도를 원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공주의 철도 부설 운동
근대의 상징, 철도/ 옛길의 몰락/ ‘유림의 반대’라는 신화/ 공주에도 철도를!

3장 도시의 변모
역사 공간을 오락 공간으로: 근대 도시공원이 된 공산성
도시의 근대적 상징물, 공원/ 공주의 첫 공원들/ 나무 심기의 문화정치/ 나들이와 소풍 장소, 유락공원 공산성
도시의 얼굴, 새 건물과 신작로: 1925년의 근대도시 공주 투어
공주의 새 모습을 찾아서/ 식견을 넓히는 도시 견학/ 신작로의 양면성/ 도로 교통에서도 소외되다
‘교육도시 공주’라는 도시 브랜드: 근대적 개발과 문화적 개발
새로운 도시 브랜드의 추구/ 근대 교육의 시작/ 공주지방법원의 이전 문제/ 도시 정체성, 도시 브랜드 만들기의 제안

4장 바깥의 눈으로 본 공주
화륜선으로 온 사람, 공주를 만나다: 미국 해군 무관
‘근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지역 도시가 통과한 근대의 시간들, 우리가 몰랐던 근대도시 공주의 이야기
식민주의와 근대화를 겪으며 탄생한 도시의 역사를 살핀다

2015년, 공주시 이인면 신영리에 KTX 공주역이 들어섰다. 호남선이 전선 개통한 1914년 이후 무려 100년이 지나서였다. 경부선이 개통한 것부터 따지면 110년이 늦은 것이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100년 넘게 유지되면서 그 노선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경부선 공주역, 호남선 공주역은 100년 전, 110년 전에 이미 생길 수 있었다. 당시 철도 노선 답사를 위해 여러 차례 조사를 행했는데 그중 공주를 지나는 안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중국 대륙과 만주로 진출하는 데 안달이 난 일본 군부는 단 1미터라도 더 짧고 빠른 노선을 원했고, 조선의 번화한 도시들과 곡창지대를 연결하는 노선-공주를 지나는 노선-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 책 《근대도시 공주의 탄생》은 서울 같은 대도시, 혹은 부산이나 대전, 인천 같은 개항지 혹은 교통요지가 아닌 지역 도시 ‘공주’가 어떻게 ‘근대’를 맞이했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살펴본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구석기 문화의 발흥지이며, 한성시대를 마감한 백제가 왕도로 삼았던 곳, 고려와 조선에서 왕의 피란지로 안전을 제공했던 장소, 그리고 조선 후기에 충청감영이 설치되어 명실상부 호서의 수부도시 역할을 맡았던 도시 공주는 근대의 도전에 직면해 변화를 강요받고 원하지 않는 모습을 수용해야 했다.
충청남북도의 분리 후 충청감영은 충남도청이 되었고, 나중에는 교통상의 이점을 갖춘 대전으로 도청을 보내야만 했다. 충남도청의 이전을 시작으로 공주지방법원처럼 충청이나 충남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들이 차례차례 대전으로 이전해갔다. 그 이전의 대가로 공주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라는 금강철교를 얻었고, ‘교육도시 공주’의 명성을 가져다준 여러 학교들을 세울 수 있었다.
근대는 여러 모습으로 왔다. 신작로와 신식 건물이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