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연은 주변인이 던진 심상한 말 한마디에서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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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 박혜연이 발견한
일과 관계, 삶을 관통하는 24가지 낱말
그는 누가 봐도 뭐하나 빠지는 구석 없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심리 상담 중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단어는 ‘존재감’이었다. 회사에서 팀원들과 사이좋게 지낸 얘기를 하며 표정이 밝다가도 ‘핵심부서’나 ‘라인’에 갑자기 촉각을 세웠고, 입사 동기 모임을 한 뒤 상담에 와서는 늘 누군가를 자기보다 존재감이 있는 사람으로 칭하며 초조해했다. 업무 회의에서 두드러진 발언을 한 사람과 그 말들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존재(存在’란 ‘있다’와 ‘있다’가 만난 단어로 그저 ‘있다’라는 뜻이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현실에 실제로 있는 대상’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존재감은 말 그대로 ‘존재가 실제로 있는 느낌’이다. 존재감이란 실은 존재감이 없는, 즉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존재해야 비로소 존재 이유가 생기는 단어다. 어딜 봐도 너무 존재가 느껴지는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그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뭘까?
분당서울대병원과 보건복지부 등에서 심리 상담을 해오다 이제는 동덕여대 교수로 청년들을 가르치는 임상심리학자 박혜연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낱말’에 집중했다. 그 낱말을 단서 삼아 질문을 이어가며 조심스럽게 파헤치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가장 깊고 본질적인 이야기가 딸려 나왔다. 그렇게 그 사람의 마음 풍경을 들여다보다가 치료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며 이 책 《맺힌 말들(아몬드 刊》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맺히다’는 ‘맺다’의 피동사로 대개는 두 가지 범주로 쓰인다. ‘한이 맺히다’처럼 가슴에 결코 잊지 못할 응어리가 되어 남는다는 뜻이 있는가 하면 ‘열매가 맺히다’처럼 열매나 꽃망울 따위가 생겨난다는 뜻도 있다.
저자는 《맺힌 말들》에 오래 전 상담했으나 이제는 헤어진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물론 성별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 ‘그’로 통칭하고 개인을 특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