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삼국문화 역사를 걷다
한반도의 고대국가 형성과 민족이동, 한민족의 역사를 재정립하다
신라의 장묘제도와 사생관, 이승과 정반대로 저승을 인식
신라 왕릉의 비밀, 천마총 발굴로 세계 고고학계 경악
?신라 1대 박혁거세 거서간
나정의 알에서 태어나 육촌장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다
?고구려 1대 동명성왕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리니 고씨로 창시해 고구려 시조 되다
?백제 1대 온조왕
100가구가 서해를 건너니 백제라, 잦은 전쟁 치르며 최강군으로 무장
?신라 2대 남해차차웅
비명에 간 부왕에 죄책감, 권력 투쟁에 절망하다
?신라 3대 유리이사금
혹독한 제왕 수업으로 조정 장악, 태평성대를 구가하다
?가야 연맹 가야 6국
아홉 간의 추대 받아 여섯 사내가 여섯 나라를 건국하니 가야라
?가락국 금관가야 김수로왕
황금상자에서 태어나 성이 김이라 가락국 왕으로 추대하다
?가락국 금관가야 허황옥
아유타국에서 배 타고 온 공주를 왕비로 삼다
?고구려 6대 태조왕
한민족 최대의 영토 제국 실현, 아시아 대륙의 맹주로 부상
?신라 4대 탈해이사금
권력 암투와 소국 간 영토 전쟁, 격동의 세월을 살다
?신라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천년 왕국 신라 절반 넘게 지배
?신라 5대 파사이사금
장가 잘 가서 왕이 되니 24년 만에 박씨 왕권 회복
?신라 6대 지마이사금
조상복 타고 나 왕좌에 올랐으나 후사 없어 수심이 가득하니
?신라 7대 일성이사금
생명보존 위해 왜국으로 망명, 우여곡절 귀국해 왕이 되었지만
?신라 8대 아달라이사금
족내 혼인으로 왕권 유지코자 했건만 불륜 파장으로 왕조사 다시 쓰다
?신라 9대 벌휴이사금
어부지리로 왕좌 얻으니 다시 석씨 왕조를 열다
?신라 10대 내해이사금
왕족 지지 속에 석씨 왕실의 만년대계 공고히 하다
?고구려 6대 동천왕
내우외환 정세에도 영토 확장, 죽어서도 만 백성의 존엄
삼국 고대사 정립으로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자!
한민족의 역사는 유장하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한 지가 올해로 4354년째다. 그 역사적 행간을 이 땅에서 존재하다 명멸한 나라들을 열거해보자.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삼한·삼국시대,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미·소 군정기, 대한민국이다.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산하면 햇수는 훨씬 소급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대한민국 또한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반만 년 역사를 영위해 오는 동안 국가 주도 세력은 수시로 교체됐고, 국경마저도 국력의 성쇠에 따라 수없이 바뀌었다.
고대 국가인 고조선 당시만 해도 촌락이나 부족 집단이 소국가의 형태를 이뤄 끊임없이 다투며 이합집산했다. 그같은 다국가 형태의 극점을 이룬 게 바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군웅열국 시대다.
삼국시대를 논함에 있어 가야도 신라·고구려·백제와 어깨를 겨눈 비중이 대등한 나라다. 김수로왕이 서기 42년 금관가야를 개국한 이래 서기 562년까지 전·후기로 나눠 서부 경남지역을 통치했던 연맹 국가다. 521년을 존속했다. 가야사는 기록으로 전하는 사료가 적어 사학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다국가 시대를 종결짓고 통일국가 시대로 견인한 게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30대 문무왕 8년으로 고구려는 28대 보장왕 27년이었다. 고구려가 차지했던 만주 일대가 아닌 대동강 이남의 강토였지만 당시의 신라로서는 국체를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후 고구려 유장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며 228년간 고구려의 옛 땅을 다스렸지만 926년 거란에 멸망하기까지의 역사가 불분명하다.
한반도 고대사 사료 부족하나
삼국 왕릉을 통해 역사 규명!
한반도의 역사는 고대로 소급될수록 미궁에 빠지고 만다. 그 당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사료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한국사 영역은 고려 중·후기에 쓰여진 《삼국사기》와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