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힘의 처참함을 비추는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거울”
『일리아스』를 힘의 서사시로 다시 읽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시몬 베유가 『남부 평론』 1940년 12월호와 1941년 1월호에 에밀 노비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글이다. 그가 언제 이 글을 집필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1938년이나 1939년의 어떤 시점에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일리아스』는 베유가 오래도록 사랑하고 자주 인용한 책이다. 일례로 1941년 마르세유에서 체포 위험에 직면한 베유는 옷가지와 한 권의 책만 챙겨 도망쳤는데 그 책이 『일리아스』였다. 또 그는 「일리아스 또는 힘에 시」에 인용한 『일리아스』 구절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이 서사시를 향한 사랑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마도 학창 시절 스승인 알랭일 것이다. 알랭은 『일리아스』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은 필연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필연성을 넘어설 가능성은 전혀 없다.” “여기서 그 어떤 시인도 직접적으로 숙고하지 못했던 전쟁의 실재를 만날 수 있다.” “힘은 모든 걸 떠받치고 있다. 힘은 판단한다.”
또 1938년 무렵엔 프랑스 지식인 사이에서 힘이 빈번한 테마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베유는 힘에 초점을 맞춰 『일리아스』를 읽는다. 그에 따르면 힘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의 영혼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까지도 힘의, 나아가 전쟁의 비밀이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임박한 전쟁의 암운 속에서 쓰인 힘에 대한 글, 전쟁에 대한 글이다.
베유는 원래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1939년에 독일군이 프라하를 침공하자 평화주의를 포기한다. 그렇지만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전투적인 글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전주의적인 글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베유는 『일리아스』를 읽으며 전쟁을 힘의 논리로 사고한다. 그에 따르면 힘의 논리는 사람의 영혼을 종속시키며, 이렇게 힘에 종속된 사람은 사물로 전락한다. 누구든 예외 없이 자신이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