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속국화하려는 청의 검은 속내,
그런데 미국이 왜 거기서 나와?!
서구 열강에 당하면서도 그들의 수법을 배워나간 청. 특히 1877년 벌어진 러시아의 오스만제국 정복과 뒤이은 베를린 회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다시 북쪽으로 물리기 위해 발칸반도의 제 세력을 오스만제국의 속국으로 인정한다. 청은 여기에서 조선 지배의 실마리를 얻는다. 즉 여러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를 얽히게 해 누구도 조선을 독식하지 못하게 하고는, 조공 관계를 근거로 청의 전통적인 속국임을 인정받겠다는 것. 하여 러시아 견제를 핑계로 ‘친중결일연미’의 관계가 필요하다고 조선을 설득한다.
마침 근대화 방안을 고민하던 조선에 ‘연미’는 놓치기 아까운 떡밥이었다. 이에 수신사 김홍집이 청의 계책을 담은 《조선책략》을 들여온다. 하지만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연합한다는 논리가 워낙 빈약한 데다가, 청의 속셈이 뻔히 보여 유림의 거센 반발만 산다. 이는 흥선대원군 세력에 기회가 되어 고종의 서형인 이재선을 앞세운 역모마저 시도된다.
이러한 혼란 끝에 1882년 드디어 조미수호조약 협상이 시작된다. 하지만 협상장에 조선의 자리는 없었다. 대신 청이 나서 조약의 큰 틀부터 세부 조항까지 협상하고, 그 와중에 조선은 스스로 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알림장을 써야 했다. 그렇게 완성된 조미수호조약은 얼핏 평등해 보였으나, 최혜국 대우라는 독소 조항이 있어 두고두고 조선을 괴롭힌다.
그래도 조선은 큰일을 치렀다는 안도감과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을 바탕으로 다른 서구 열강들과의 수교를 이어간다. 하지만 전혀 예상 못 한 곳에서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고 마는데…. 진앙지는 조선의 내부, 백성이자 공권력의 말단인 군졸들이었으니, 그들이 일으킨 반란에 한중일 삼국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임오군란으로 시야 제로 상태에 놓인 조선,
저 먼 베트남에서 벌어진 통킹 위기로 구사일생하는가?!
흥선대원군은 집권하며 쇄국과 양요를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