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같이 놀이 할까? 내가 문어가 돼 볼게”
: 친근한 관계에서 낯설고 위협적으로 돌변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문어’
‘금이’에게는 원숭이처럼 장난을 잘 치고 웃기고 잘 놀아주는 오빠가 있다. 어느 날 금이가 방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원숭이 오빠가 들어온다. 이상하게도 문까지 걸어 잠그는 그의 표정과 숨소리가 평소와 사뭇 다르다. 원숭이 오빠가 속삭인다. “우리 같이 놀이 할까? 내가 문어가 돼 볼게.”
작가가 친족 성폭력을 주제로 그림책을 쓰기 위해 노르웨이 베스트폴주 친족 성폭력 센터를 찾아갔을 때 그곳의 책임자는 말했다. “문이 닫혀 있는 거죠, 잠겨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손이요,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해요. (피해 아이들은 그 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 손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리지 못해요.” 작가는 한번 붙들리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고 어디든 따라다니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폭력의 순간을 ‘문어’에 빗대어 이야기를 펼쳐낸다.
● “혹시 내 잘못은 아닐까? 내가 시작한 것은 아닐까?”
: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두려움’과 ‘자기의심’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글
그날 이후 금이의 방, 금이의 몸, 금이의 머릿속은 모두 문어 차지가 되고 만다. 금이는 숨을 쉴 수도, 말을 꺼낼 수도 없다. 문어가 어디든 따라다니는 것 같고, 문어 먹물이 입과 목을 채우고 머릿속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이가 ‘그 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따르던 가족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뒤 금이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작가는 폭력의 순간에 뿌리치지도, 달아나지도, 싫다고 말하지도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금이의 마음을 공들여 묘사한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내 잘못은 아닐까? 내가 시작한 것은 아닐까? 내가 그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기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 봐 겁낸다. ‘엄마가 안 믿어 주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