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서론
1 첫 번째 선전포고, 1917~1939
2 두 번째 선전포고, 1947~1948
3 세 번째 선전포고, 1967
4 네 번째 선전포고, 1982
5 다섯 번째 선전포고, 1987~1995
6 여섯 번째 선전포고, 2000~2014
결론: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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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명문 집안 연구자, 한국과의 인연
라시드 할리디는 국내에 거의 처음 소개되는 학자이지만, 이미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CNN, BBC 등 언론에 종종 인터뷰이로 등장하고, 『팔레스타인의 정체성Palestinian Identity』 등 그의 주요 저술들은 20세기 중동 사회의 민족주의?식민주의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력이 놀라운데, 저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정치인, 판사, 외교관, 언론인을 배출한 팔레스타인의 명문 가문 할리디가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고조부 유수프 디야 알할리디는 1870~1906년 사이 세 차례나 예루살렘 시장을 지냈고(예루살렘, 몰타, 이스탄불, 빈 등에서 교육받았다, 큰아버지 후세인 알할리디 역시 예루살렘 시장(1934~1937을 역임했고, 영제국의 탄압을 받아 외딴 섬 세이셸 제도에서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서문에는 저자가 초기 시온주의 운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할리디 도서관을 애용했다고 밝히는데, 이 도서관은 1899년 저자의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니의 유산으로 예루살렘에 세운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사설 도서관이다(팔레스타인 문학·역사에 관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한편 할리디의 아버지 이스마일 라기브 알할리디는 19년간 유엔에서 일했고(유엔 정치안보이사회국 소속, 아랍-이스라엘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며 안보리 회의의 실무를 담당했다(덕분에 저자도 1967년 전쟁 당시 휴전을 교섭하던 유엔 회의장에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할리디 본인도 1982년 이스라엘 공군의 베이루트 공습 당시 가족들과 함께(아내와 두 딸, 어머니, 남동생 현장에 있었고, 서베이루트 포격과 포위 공격이 진행된 10주간 아이들을 돌보면서 <물과 전기, 신선 식품 부족이 부족한 상황과 쓰레기 태우는 냄새를 견뎌 냈다>. 1992년에는 오슬로 회담의 일환으로 진행된 워싱턴 교섭에 팔레스타인 대표단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