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더그라운드,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제1장 지상의 무게를 견디며-서울
제2장 이곳을 발판으로-가덕도
제3장 일본까지 최단거리-부산
제4장 바다를 건너면-시모노세키
제5장 아래로 아래로-지쿠호
제6장 도망칠 수 없는 지옥-나가사키
제7장 누군가는 그곳에-나가노
제8장 온 섬이 눈물 구멍-제주도
제9장 죽음을 명령하다-지란
제10장 자살의 언덕-오키나와
제11장 얼마나 죽었는지-제주도
제12장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파주
에필로그 공간은 기억을 저장한다
참고 자료
답사한 강제 동원 주요 도시
강제 동원 주요 연표
제1장 지상의 무게를 견디며-서울
2017년 10월에 공개된 서울의 비밀 지하 공간 세 곳을 찾아 나선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건설된 대규모의 경희궁 방공호, 군사정권 때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의도 지하 벙커(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세마(SeMA, 그리고 1974년 지하철 1호선 건설 때 만들었다가 노선이 변경되면서 유령역이 되어버린 신설동 지하 폐역 등을 찾아간다. 아직도 언제 왜 누가 만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지하구조물들이 있을 것이다.
제2장 이곳을 발판으로-가덕도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가덕도. 요즘에는 신공항 건설로 주목받고 있으나 가덕도는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설치되는 등 오래전부터 한반도 남단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가덕도는 러일전쟁 때부터 침략과 수탈의 역사 전면에 서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외양포의 포진지를 비롯해 일본군이 사용하던 관사, 막사, 위병소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이 일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토지나 가옥이 국방부 소유로 귀속되면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제3장 일본까기 최단거리-부산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의 강제 동원은 부산이 출발지였다. 1938년 일제는 중일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동원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제국 신민을 징용해서 총동원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인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기업이 운영하는 탄광과 군수공장 등 약 3,900곳의 작업장에 최소 65만 명 이상이 강제 동원되었다고 한다. 강제 동원의 참상을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건립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등을 찾아본다.
제4장 바다를 건너면-시모노세키
부산에서 출발해 시모노세키에 내린 조선인들은 탄광이나 제철소로 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굶주림과 구타에 시달렸다. 조선인 노동자 상당수가 투입되어 공사가 진행된 시모노세키와 규슈의 기타큐슈를 잇는 간몬(關門터널, 6천 명이 넘는 조선인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