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마이 집 가는 길
2. 기쁜 날, 할마이 생신
3. 수많은 사람을 뚫고
4. 또다시 희망을 품다
5. 오마니, 오마니!
6. 돌아돌아 할마이 집에 오다
7. 순득이와 손을 잡고
9. 새로운 만남
10. 아귀아귀 먹는 아이
11. 거룻배와 트럭에 몸을 싣고
12. 낯선 피란민 수용소
13. 가엾은 순득이
14. 저는 이제 어캅네까?
15. 달달한 봄바람이 불어오다
작가의 말_엄마가 보고 싶은 날
부록_1951년 1월의 이야기
1.4 후퇴, 전쟁을 피해 남하하게 된 봉애와 어린 순득이의 고된 피란길
1951년 1월. 중공군이 6.25 전쟁에 개입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북진했던 남한군과 유엔군이 다시 밀리면서 수많은 피란민이 서울 이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봉애는 이 전쟁 한가운데에 남겨진 아이입니다. 먼저 서울로 가 계신 아버지를 따라 곧 내려갈 계획이었던 봉애네 식구들은 다시 밀려오는 북한군 행렬에 느닷없는 피란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죠. 어렵게 올라탄 화물열차. 얼어붙은 강을 건너 강화로 가는 길. 그러나 서울마저 북한군 손에 넘어가게 되고, 봉애는 정처없이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내려가게 됩니다. 봉애와 순득이의 여정을 통해 1.4 후퇴, 남으로 피란 온 사람들의 기약 없는 여정을 함께하며 당시를 살아 낸 어른들의 슬프고 고된 전쟁 속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족의 죽음 그리고 이별, 지켜야 할 가족과 만나야 할 사람들
봉애는 여러 죽음을 목격하고 급기야 엄마마저 잃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동생 순득이를 보며 참고 또 참습니다. 봉애가 참을 수 있었던 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 그리고 어린 동생과 아버지, 즉 만나야 할 그리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어린아이가 따로 없습니다. 봉애는 이제 열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마를 잃고 지낸 몇 달 동안 그 누구보다 어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고, 아버지를 찾아야만 했으니까요. 피란길에 만난 영옥 언니도 마찬가지였죠. 말도 못 하고 아귀아귀 먹기만 하는 어린 영희를 들쳐업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또한 봉애 만큼이나 안쓰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영옥 언니, 아니 당시 모든 사람이 살아야만 할 이유는 지켜야 할 가족, 만나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쟁을 견뎌 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서로를 향한 공감과 위로가 담긴 이야기
전쟁 속 삶은 누구에게나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에게 담요를 던져주고, 모자란 주먹밥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