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군주 또는 집단 정신
1차 대전 발발 직후 슬라브어와 더 가깝고 독일어와 더 먼 ‘페트로그라드’로 이름을 바꾸고, 1924년엔 바로 이 도시에서 일어난 혁명의 주역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던 이 도시는, 소련 체제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면서 1991년 주민투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당시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지지하던 이들은 이 복원이 ‘계몽·문화·개방성·자유·세계주의·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고,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은 세계로부터의 고립, 전제 정치의 계속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명칭 변경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혁명을 통해 얻어졌고, 레닌그라드 봉쇄라는 영웅적인 투쟁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인으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당시 ‘주민들이 악마의 이름보다는 성자의 이름이 붙은 도시에 사는 것이 낫다’고 촌평했다.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은 시대 예술을 이끌어갔고, 소련 정권으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정권이 남편과 아들의 생명까지 가져갔던 시인 아흐마토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음에도, 9백 일의 참혹하고도 기념비적인 봉쇄 기간을 말할 때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만을 사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저자 링컨 특유의 탁월한 서술 기법과 통찰력 있는 문장은 이 대작을 한 도시의 전기傳記이자 도시 연대기의 백미로 만들었으며, 픽션 문학만큼 흥미진진하고 긴박감 가득한, 감동과 드라마가 살아 숨 쉬는 스토리텔링으로 엮었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지향점으로 삼고 이곳을 수도로 만드는 데 사람들을 어떻게 강제하였는지, 유럽의 당시 건축가들이 이 신생 수도로 들어와 어떻게 자신의 포부를 펼칠 기회를 잡았는지, 건축에 중독되다시피 한 여제들이 이 도시에 어떤 화려함을 창조해냈는지, 그리고 유럽에서 들어온 계몽주의가 귀족들의 토론 주제이기를 넘어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