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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안흥량 난행량 : 파도가 들려주는 세곡선 이야기
저자 이상각
출판사 아이필드
출판일 2021-10-20
정가 17,000원
ISBN 9788994620190
수량
머리말 “올해도 바다만 풍년이라네.” 5
제1장 조선의 에너자이저, 조운선
01 고려, 조운이 끊기자 나라가 망했다 17
02 한양은 조운의 최적지였다 33
03 왜구를 물리치니 난행량이 가로막네 43
제2장 나는 전함사 종놈이라오
01 전함사, 조선의 배를 만들다 55
02 신숙주의 일타쌍피, 병조선 61
03 에헤라 데헤라 노를 저어라 67
제3장 대동법, 사선 조운 시대를 열게 하다
01 민생의 물꼬를 튼 대동법 77
02 사선 조운 시대가 열리다 81
03 애민군주 정조의 조운정책 89
제4장 안흥량, 조운선의무덤
01 안흥량은 난행량 103
02 만대 바다 고패 사건 117
03 막동 앞바다 난파 사건 126
제5장 파도가 남긴 이야기
01 마도4호선의 메시지 137
02 조운선 선원들의 나날 146
03 나랏돈은 빼먹은 놈이 임자 152
제6장 백년하청, 운하놀음
01 달걀로 바위 치기, 굴포 판개 169
02 파도 파도 무너지는 의항 개미목 177
03 꿩 대신 닭, 안면곶 판목 182
04 마지막 승부, 설창육수책 185
제7장 《조행일록》으로 보는 조선 후기의 조운행
01 성당창에서 세곡을 정비하다 199
02 웅포에서 출발하다 206
03 임무를 게을리한 호송원을 벌하다 209
04 안흥량, 관장목을 무사히 지나다 212
05 손돌목을 건너다 217
06 염창목을 거쳐 광흥창에 이르다 223
후기 “안흥하여 태안하라.” 233
참고자료 237
찾아보기 239
고려, 조운이 끊기자 나라가 망했다
고려의 재정의 근간을 이루던 조운(漕運이 무신란(1170년 이후 정치적 기능이 약화되어 조운에 대한 행정력이 떨어지고, 원·명 교체기에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하면서 왜구의 침탈이 잦아졌다. 우왕 재위 14년간 왜구의 노략질이 무려 266회나 되었다. 신진사대부의 지원을 입고 실권자로 등장한 이성계는 조운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해운과 염철사업에 능한 왕강과 조운 정비에 일가견이 있는 노숭을 기용해 제도를 정비했다. 왕강은 운하 개착 사업을 이끌었고, 노숭은 조거(漕渠와 수참(水站을 설치하고 조전성(漕轉城 축성을 제안했다.

“물길이 열려야 국운이 열린다.” -- 한양은 조운의 최적지
조선이 개국되고 수도를 정할 때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조운의 최적지 여부였다. 그곳이 한양이었다. 수도가 정해지자 고려 때 사용한 조창(漕倉 점검에 나섰다. 왜구의 약탈을 어떻게 피할지, 조운할 때 자연적 환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였다. 1395년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침몰하자 다급해졌다. 이런 사고는 매년 일어날 것이었다.

“조운을 회복하라!” -- 가장 시급한 국가 대사
조선의 실권자 태종은 마음이 급했다. 바다 쪽에 4곳, 강 쪽에 5곳의 조창을 세우고 조운 제도 확립에 큰 힘을 쏟았다. 평안도, 함경도처럼 물산이 적고 중앙에서 먼 곳은 잉류 지역이라 하여 현지에서 걷은 세금을 그곳에 두고 쓰게 했다. 임운이라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 배 500척을 건조하게 했다. 임운은 다음해까지 250여 척을 만들어 10만 2,314석을 한양으로 실어 나르게 했다. 소원대로 배는 만들었지만 왜구의 노략질은 여전했다.

왜구를 제압하니 난행량(難行梁이 뱃길을 막네
노략질이 끊이지 않자 1419년, 왜구의 거점 대마도 정벌에 나서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왜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포구 3곳을 열었다. 부산포(동래, 내이포(웅천:진해, 염포(울산 등 이른바 삼포개항이다. 왜국과 관계가 안정을 찾으니 조창이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