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추얼이 소멸해간 역사를 향수 없이 간략히 서술할 것이며 그 소멸의 역사를 해방의 역사로 해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병적 현상들,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침식을 뚜렷이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를 집단적 나르시시즘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법한 다른 삶꼴Lebensform들을 숙고할 것이다.”(7쪽
루틴과 챌린지의 시대, 리추얼의 사라짐
어찌 보면 리추얼의 시대인 듯하다. 미라클 모닝, 명상, 요가, 헬스, 달리기, 독서, 일기쓰기 등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자신만의 ‘리추얼’과 ‘루틴’을 소개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참여하기를 권유하며 ‘챌린지’하는 포스팅이 풍성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제한된 일상을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인구가 많다. 그런데 ‘리추얼의 종말’이라니, 무슨 이유에서일까? 《피로사회》 《투명사회》 《심리정치》 《고통 없는 사회》 같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철저히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집중한다. 우리의 존재와 인식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여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원제 “리추얼의 사라짐: 현재의 위상학”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라져가고 있는 ‘리추얼’에 관한 사색을 펼치면서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보고, 이 시대의 모순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책이다.
리추얼이 삶을 지속하게 한다
이 책에서 대부분 ‘리추얼’로 옮긴 독일어 ‘Ritual’은 저자에 따르면 ‘의례’, ‘의전’, ‘전례’, ‘의식, ‘축제’, ‘잔치’ 등의 의미를 두루 포괄한다. 앞서 말한 최근의 ‘리추얼’ 유행에서 가리키는 ‘반복적으로 행해짐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활에 리듬감을 주는 개인의 일상적 습관’ 정도와는 그 뜻이 사뭇 다른데, 이 책에서 리추얼은 “삶을 더 높은 무언가에 맞추고 그럼으로써 의미와 방향을 제공하는 상징적 힘”(122쪽을 지닌다. 정처 없는 삶을 정박할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닻과 같은 구실을 한다.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