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보여주는 철학적 삶에 대한 옹호!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감옥에서 처형당한다. 약 일흔 살의 나이, 고령의 철학자는 왜 죽게 되었을까?
일본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연구의 일인자로 정평이 난 저자 다나카 미치타로는 소크라테스를 다루는 것이 사료가 적고, 소크라테스의 직접 저작이 없기 때문에 매우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고 책 서두에 밝히면서도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와 다른 가족, 생계 문제 같은 개인사를 비롯해 죽음의 원인, 그를 다룬 수많은 고전 속 그의 철학에 대한 면모 등,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독자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가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독자는 “소크라테스는 전 생애를 정의의 문제에 바친 사람이며,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만인에게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이었고,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저자가 내린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이런 노력 덕분에 독자는 ‘철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지만, 말년의 행적 이외에 알려진 바가 없는 소크라테스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했음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기소 항목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도시가 믿는 신을 믿지 않았고, 새로운 영적인 것을 도입하였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킴으로써 부정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정치 제도에 비판적이었고, 이는 청년들에게 국가 제도를 경시하게 한다고 지적받았다. 또 독재정권에 대한 옹호라고 비판받은 것이다. 소크라테스 제자이거나 친한 무리가 아테네에 반기를 드는 인물들이었다는 것도 이러한 아테네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진보적인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같은 교육법 등은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폭력적 방법으로 이해되었고, 펠로폰네소스전쟁의 패배로 인한 사회 분위기가 더욱더 소크라테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