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쓸 수 있는 것을 계속 쓰는 삶을 위해
1. 거리가 필요해서 쓴다
세상은 내게 결코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쓴다는 건 쉬지 않고 경계를 의식하는 일
쓰는 사람을 모멸하긴 어렵다
그건 짜증이 아니라 슬픔이지
2. 고통에 지지 않으려고 쓴다
이상한 성격 놀이
타인의 불행에 민감한 마음
그게 다 네 탓일 만큼 넌 대단하지 않아
에세이가 술주정이 되지 않으려면
미쳐지지 않아서 쓰는 글
3. 나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쓴다
일흔 즈음에 감사하고 싶은 것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글에게 배신을 당했을 경우
시간과 화해하는 사람
내 속엔 애와 개가 있어서
곱게 취한 어른들의 세상
4. 작게 실패하기 위해 쓴다
글을 썼다기보다 똥을 쌌을 경우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
아침의 개다리춤
비와 발자국
5. 더 이로운 연결을 꿈꾸며 쓴다
지나치게 외롭게 두어서는 안 된다
도시락 20만 개의 여행
행간의 자유
두 사랑
이를테면 책동네 사람들의 풍요란
나도 부캐가 있었으면 좋겠다
6. 고독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 쓴다
2인 가구의 어느 날
프리랜서의 기쁨과 슬픔
얼마나 가져야 외롭지 않을까
코뿔소 모녀
내 뒤에 남겨질 무언가 하나
7. 잊지 않으려고 쓴다
기자가 될 수 없는 사람
기억의 집 (1
기억의 집 (2
홍시에 대한 욕망
나 같은 거 갖다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씻기고 입혀줄 사람
삶을 넘을 수는 없다
씀으로써 치유하고, 씀으로써 화해하고,
씀으로써 더 선명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자아와 마음의 밸런스를 잡아나가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글을 쓰면 참 좋을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이 책은 바로 그들, 세상의 속도와 소음이 조금 버거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코로나 팬데믹 초반에 웃지 못할 우스개가 있었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평온을 되찾고 있다는 이야기. 모임, 회식, 미팅 등을 제한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그동안 저마다의 의무로 ‘사교의 얼굴’을 꾸며내야 했던 사람들에게 얼결의 자유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비대면 문화가 안타까운 한편 “얼결의 자유”를 느낀 사람 중 하나였다. 오롯이 내 손으로, 나만의 속도로 운용되는 시간의 소중함을 그러므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덜한 게 아니다. 다만 빨리, 한꺼번에 하지 못할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기 좋은 틈과 간격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더 깊고 단단한 통로를 낸다. 글쓰기도 그렇다.”
계절처럼 오는 슬픔이 마음을 할퀼 때, 결정을 미루고 싶은 선택지들 앞에서 멍하니 머뭇거릴 때, 작가는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글을 썼다. 교직과 기자직과 몇 군데의 출판사를 떠나는 동안에도 쓰는 일만큼은 내려놓지 않았다. 버려도 될 마음과 간직해야 할 마음을 씀으로써 구별했고, 원인 모를 통증들을 씀으로써 치유했고, 미숙하고 나약했던 과거의 시간들과 씀으로써 화해했다. 수십 번 고쳐 쓴 글을 몇 번의 주춤거림 끝에 공개하고, 그 글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하며 느린 연결의 기쁨을 오랫동안 누렸다.
불안하고 시끄럽고 빠른 세상에 보폭 맞춰 걷느라 균형을 잃기 쉬운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루 30분만이라도 오로지 내 시간, 내 감정에 머무르기를 권한다. 당신 안에 갇힌 크고 작은 슬픔, 분노,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