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1장 한강 수복의 꿈을 찾아서
백제와 고구려, 한강 유역 공방전
웅진에서 와신상담하다
불안정한 왕권과 정치적 혼란
무령왕, 왕위에 오르다
*역사 이야기 보따리: 백제의 6좌평 제도
2장 무령왕의 남진정책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백제의 세력
신라·가야와 활발하게 교류하다
백제와 신라의 동맹과 파국
*역사 이야기 보따리: 가야, 왜 삼국인가
3장 바다 건너 서쪽에서 온 문화들
웅진백제, 양나라와 긴밀하게 교류하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백제화의 상징, 무령왕릉
중국의 최고급 문화를 동시대에 받아들이다
*역사 이야기 보따리: 삼국시대의 조공과 책봉
*역사 이야기 보따리: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4장 왜와 백제의 강고한 협력
백제의 왕과 왜의 관계
무령왕릉에서 살펴본 백제와 왜의 관계
바다를 건너간 백제 왕족과 백제 사람들
*역사 이야기 보따리: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
5장 웅진백제의 화려한 부흥
만방에 ‘갱위강국’을 알리다
무령왕 시대의 안정적인 내치
진정한 중흥 군주가 되다
*역사 이야기 보따리: 백제 왕실의 결혼
*무령왕 로드 체험하기
*백제 역사 연표
*참고 자료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선포했던 무령왕
2021년은 백제 무령왕이 양나라에 보내는 조서에 “고구려를 수차례 격파하여 다시 강국이 되었다”는 뜻의 ‘갱위강국’을 선포한 지 1,500년이 되는 해이자,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런 시점에서 무령왕의 업적을 살펴보고 한반도 최대의 중흥 군주였던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웅진백제 초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무령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이전 세 명의 왕이 암살당하거나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5세기 말에 즉위한 동성왕이 22년간 재위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고, 그를 이어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일으킨 왕이 바로 무령왕이다.
무령왕은 스스로 자국이 다시 강해지게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그만큼 무령왕은 다시 강성해진 백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백제는 6세기 초반에 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무령왕 시기 백제는 군사적으로는 고구려를 수차례 격퇴하여 한강 유역의 일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고, 국경 지역에 성과 목책을 쌓아 방어를 견고히 했다. 또한 남진정책을 통해 호남 지역의 일부와 섬진강 하구 유역을 확보했다.
무령왕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간 닫혀있었던 외교의 활로를 열었다. 그 덕분에 백제는 중국과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고 문물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었다. 중국 남조 양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고, 이를 백제 고유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백제화에 성공했다. 또한 이런 백제만의 문화를 왜와 가야, 신라에도 전파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과 일본, 한반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태동을 가져왔으며, 그 중심에 백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역사를 재조명하다
《갱위강국 백제의 길》은 백제의 역사, 그 중에서도 5~6세기 당시 한반도의 정세와 문화상을 무령왕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백제는 삼국시대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