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리의 소중한 말과 글
지석영(1855∼1935년 우리글의 필요성을 깨치다
호머 헐버트(1863∼1949년 한글과 조선을 사랑한 외국인
주시경(1876∼1914년 한글 연구의 주춧돌을 놓다
박용만(1881∼1928년 미국에서 한글 운동을 펼치다
일제 강점기와 조선어 말살 정책
2장 《말모이》와 주시경의 제자들
김두봉(1889년∼미상 주시경의 사상을 잇다
이상춘(1882년∼미상 한글 사전 원고를 기증하다
대종교와 한글학자들
장지영(1887∼1976년 한글 보급 운동에 앞장서다
최용신(1909∼1935년 신여성 혼불로 살아가다
한글 운동과 계몽 운동
3장 《큰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권덕규(1890∼1950년 한글로 역사서를 쓰다
이극로(1893∼1978년 한글 사전에 열정을 바치다
이우식(1891∼1966년 조선어 학회 재정 이사로 일하다
조선어 학회 사건
4장 우리말의 다듬기와 변화
최현배(1894∼1970년 감옥에서 가로쓰기를 완성하다
이인(1896∼1979년 조선어 학회를 도운 조선인 변호사
이희승(1896∼1989년 국어 문법의 길을 열다
정인승(1897∼1986년 《큰사전》 수정에 힘을 싣다
부록
참고 문헌
작가의 말
<책속에서>
“선생님, 무얼 그렇게 열심히 적습니까?”
순돌이는 지석영이 적는 책을 보았다. 언문이 적혀 있었다. 지체 높은 분들은 다들 어려운 한자로 적는데, 지석영은 언문으로 적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
“이제 한시라도 빨리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킬 《말모이》를 만들어야 한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뜻이다. 주시경은 한글을 모은 《말모이》 사전 사업을 제자들과 함께하자고 했다.
“선생님이 이끌어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은 주시경과 사전 《말모이》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911년 《말모이》 편찬 사업이 시작되었다.
-본문 중에서
이상춘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사전은 한 민족의 전체 문화를 담는 보고입니다. 개인이 사전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민족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사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제 원고가 제대로 쓰여서 바르게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_본문 중에서
최용신은 천곡교회 부속 야학인 강습소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칠 계획이었다. 최용신은 집마다 돌면서 아이들을 강습소에 보내 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강습소가 무얼 하는 곳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돈도 받지 않고 교육을 해 주겠다는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거 가르치면 아이를 망친다니까.”
“계집애한테 뭐 하러 글과 산수를 가르쳐. 일이나 시키면 되지.”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못 보내요.”
_본문 중에서
권덕규는 아이들에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조선인은 조선의 말과 글을 익히고 써야 한다. 언어를 빼앗기면 민족은 사라진다. 얼이 없는 민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_본문 중에서
최현배는 표준어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언은 시골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언을 흔히 그 나라의 서울말에 반하는 지방 말이라고 해석하는데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