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귀신이 사는 이유
한번 자면 한 오백년 자는 잠귀신 노리가 실컷 자고 눈을 떠 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습니다. 밤이면 조용하고 깜깜해서 놀기 좋던 강 남쪽 배추밭에 불빛이 가득합니다.
같이 놀 친구를 찾아 헤매던 노리는 드디어 친구를 발견합니다. 눈이 퀭하고 흐느적흐느적 걷는 게 딱 봐도 귀신인 걸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아이는 귀신이 아닙니다. 잠이 부족해서 걸으면서도 졸고 있는 자미입니다.
귀신같이 보이는 건 자미만이 아닙니다. 깊은 밤 강남 거리를 채운 사람들, 낮밤 없이 숨가쁘게 일하는 사람들, 학원에서 영어, 수학 문제를 풀이하는 선생님들 또한 귀신과 닮았습니다.
이렇듯 그림책 《한밤중에 강남귀신》에서는 사람과 귀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김지연 작가는 인간의 세계는 수채로, 그 위를 떠도는 귀신들은 판화로 작업해 이질적인 두 존재를 만나게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낮에 놀고 귀신들은 밤에 놀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밤에 잠을 안 자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잠귀신 노리의 대사를 통해 밤이 깊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질문을 던집니다.
귀신과 아이의 만남,
서로를 위로하는 약자의 마음
흔히 귀신이라고 하면 오싹오싹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귀신들은 무서운 모양새로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강남귀신》에 나오는 귀신들은 무서운 것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잠귀신 노리는 긴 머리를 풀어헤쳤지만 동글동글한 얼굴에 귀여운 인상입니다. 노리 앞에 나타난 것도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라 같이 놀자는 겁니다. 과거 노리와 함께 놀던 각시귀신, 몽달귀신, 억울귀신, 아기귀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밤에 잠을 안 자서 놀 수가 없다”, “인간들은 일도, 공부도 너무 많이 한다”며 투덜대는 모습을 보면, 속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이 되어서도 맘 편히 못 자는 자미를 보고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