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짧은 여자, 핑크색을 좋아하는 남자는 존중받지 못해도 괜찮은가요?
‘여자답게’, ‘남자답게’를 향한 진지한 고찰
『29센티미터』의 주인공 시하는 일상적으로 다니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다 가위에 귀가 찔리는 경미한 사고를 계기로 가위를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가위는 때로 입을 크게 벌린 악어가 되기도 하고, 세상을 집어삼킬 흉기가 되어 꿈에서도 시하를 괴롭혔다. 트라우마가 시하의 마음을 거세게 사로잡을수록, 미용실에 갈 수 없는 시하의 머리카락은 정직하게 쑥쑥 자랐다.
“애가 완전 계집애가 되었네. 이건 누구 취향이야?”
“당장 가서 시하 이발 시켜라. 우리 손자 꼴이 이게 뭐냐?”
“머리띠 하니까 이상해. 진짜 여자 같아.”
“시하 누나, 누나 남자 아니지? 여자 맞지?”
“얘야, 여자 화장실은 저쪽이다!”
- 본문 중에서
시하는 머리카락 하나로 가족들을 비롯해 친한 친구, 동네 사람들, 심지어는 지하철에서 마주친 타인으로부터도 성별을 의심 받으며 커트를 강요당해야 했다. 가위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이발 기피로 “여자 되고 싶니?”라는 성별 논쟁에 휘말린 시하는 머리카락의 길이로 성별이 바뀌지 않는다는,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진실이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맥없이 힘을 잃는 현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는다. 시하는 트라우마와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트라우마를 따르자니, “남자예요.”를 설명해야 하는 일상이 한심하고, 눈 딱 감고 머리를 자르자니, 트라우마가 기승을 부리고…….
이상권 작가는 트라우마든 세상의 고정관념이든, 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취하고 치유하는 열쇠가 결국은 우리 안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쉽지 않지만, 그 대단한 걸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도 결국 우리 자신이 아닐까.
남자, 여자가 아닌 ‘어떤 모습의 나’로 설 것인가를 묻다
『29센티미터』는 작가와 같은 마을에 살던 아이가 실제 겪은 이야기를 모태로 지은 이야기다.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