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현장에 가면 이순신이 살아 있다
프롤로그 현장에서 만난 이순신
최적의 장소에 최고의 진영을 세우다 | 연전연승의 기반이 된 정보망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백전백승 | 기술로 전장을 압도하다
전장에서 빛난 인간다움 | 소신과 원칙의 리더십
1부 / 임진왜란 그리고 이순신
1 동아시아를 뒤흔든 전쟁
폭풍전야의 세 나라 | 남해안의 수군 진영 | 전란에 대비하다
2 전쟁이 시작되다
왜군의 조선 출병로 | 임진왜란 7년의 기록
3 백의종군과 정유재란
이순신 제거를 위한 음모 | 백의종군과 수군 재건
다시 일어서는 조선 수군
2부 / 천문과 지리의 전략가
4 이순신의 전략전술
남해안의 특징을 간파하다 | 지리를 활용한 전략전술 | 전투보다 철저한 전투 준비
5 이순신이 싸운 현장 속으로
전투편제 | 제1차 출전 | 제2차 출전 | 제3차 출전 | 제4차 출전 | 웅포해전 | 견내량 봉쇄작전 | 제2차 당항포해전 | 춘원포해전 | 장문포 수륙합동전 | 원균의 시대 | 다시 시작된 전쟁, 정유재란
에필로그 1 현장에 가야 보이는 것들
에필로그 2 전적지 비정과 기념사업의 문제점
부록 1 이순신 전적지 고지명 지도
부록 2
이순신 전적지 답사 제1코스(고성-통영-거제
이순신 전적지 답사 제2코스(명량 권역
이순신 전적지 답사 제3코스(노량-여수-고흥 권역
이순신 전적지 답사 제4코스(부산-창원 권역
임진왜란 연표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이기지 못할 싸움이 없다.”
천문과 지리적 관점에서 이순신의 전략을 분석!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 비해 병사나 전선에서 수적 열세에 있던 조선 수군으로 어떻게 바다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장군이 남해안의 지형뿐만 아니라 조류의 흐름과 날씨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을 만큼 천문과 지리를 이용한 전술의 대가였다는 점이다. 이순신 함대의 항해 기록을 보면 ‘량梁을 지켜 적의 진출을 막고, 포浦를 공격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이 장군의 가장 큰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좁은 물길인 량梁은 왜군에 비해 병사나 전선에서 수적 열세에 있던 조선 수군이 왜 수군의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여수에서 한산도로 진을 옮겨 견내량을 지키며 왜군의 서진을 막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착량, 사량, 노량, 명량 등의 길목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를 굳건히 지켜냈다. 반면 적을 공격할 때는 포를 공격했다. 도망갈 곳이 없는 포구의 입구를 막아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조선 수군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포격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옥포, 합포, 적진포, 당항포, 안골포, 다대포, 부산포, 등이 바로 그곳들이다. 전투 준비에서 누구보다 철저했던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바다의 뱃길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높은 산에는 망군을 내보냈다. 경남 고성의 벽방산, 거제도 대금산, 한산도 고동산, 해남 달마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처럼 이순신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남해의 특징을 완벽하게 이용하여 왜군에 맞서 조선의 바다를 지켰다.
저자는 또한 바다의 날씨와 조류, 해류, 지형 등을 분석하여 재미있는 결과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정유재란 때 부산포의 절영도 앞바다로 출전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이순신이 거부한 것은 겨울철 해상의 험악한 날씨와 쿠로시오난류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량해전과 관련해서는 시간대별 조류를 분석하여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