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렌즈로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천천히 잡아낸 듯한 느낌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는 영상미 뛰어난 그림책이다. 흰 여백 안에 부드럽게 겹쳐 칠한 수채 윤곽선이 비안개처럼 아련하다. 연노랑, 초록, 파랑을 주조색으로 한 수채 그림도 잔잔하고 차분하다. 이야기가 극히 절제되어 있어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깔끔한 맛이 있다.
첫 페이지를 열면 한 여자아이가 다락방 침대 위에 올라앉아 등 뒤로 빗소리를 느끼는 조그마한 화면이 나온다. 다락방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간 중의 하나이다. 대개의 어린이는 커다란 방을 놓아두고도 상자에 구멍을 뚫고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혼자만의 공간은 어린이를 자기 함몰의 세계로 내모는 병적인 공간이 아니다. 다락방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서도 힘들이지 않고 자기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이는 어린이와 어린이 마음을 가진 이들뿐이다.
이 그림책의 화자(話者인 여자아이는 창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고 “비가 오고 있나 봐” 하고 나직이 속삭인다. 여자아이는 굳이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소리를 통하여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 다음 페이지를 열면 유리창에 부딪혀 흐르는 빗방울의 흐름이 섬세하게 포착되어 있다. 그림책 안에서 금세라도 비 냄새가 확 풍겨날 것만 같다. 여기서부터 빗방울의 흐름을 관조하는 시선이 독자에게 넘어간다. 독자는 여자아이의 나직한 독백을 따라 천천히 비 오는 날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지붕에서 처마 밑으로 굴러 떨어져 홈통으로 쏴아 하고 쏟아지는 빗줄기로 온 도시가 축축하게 젖는다. 시간도 멈춰 버릴 것만 같은 정적인 화면을 닫으면, 새가 비를 피해 날고 개구리가 못으로 뛰어들고 파도가 굽이치는 동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녹아드는 장관이 조그만 그림책의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비 온 뒤의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정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빗줄기가 한차례 휩쓸고 간 정적인 공간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