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 김혜린의 피, 땀, 눈물의 대서사시!
한국 만화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북해의 별>은 만화가 김혜린의 데뷔작이다.
스물하나 앳된 나이에 어떻게 이런 대하 장편을 홀로 기획하고, 쓰고, 그려냈을까? 작업 도구는 종이와 펜과 잉크, 그리고 몇 장의 스크린톤이 전부다. 눈보라를 표현하려면 칫솔에 화이트 물감을 묻혀 원고지에 뿌려야 했다. 포토샵도 스케치업도 없던 시절, 오로지 수작업만으로 한 올 한 올 그려낸 흑백만화의 진수 <북해의 별>! 김혜린이 피, 땀, 눈물의 장인 정신으로 완성한 2,400장 만화 원고가 실물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그 <북해의 별> 원고에 붙어 있던 빛바랜 사진 식자를 지우고, 낡은 트레이싱지를 떼고, 원고에 남은 여러 편집부의 흔적을 없애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2,400장 모든 원고를 새롭게 스캔하고 보정, 복원한 이번 RETRO PAN은 작가가 종이 원고와 함께 이제 데이터로도 소장할 수 있어 그 의의가 크다.
<북해의 별>은 1700년대 북유럽의 해상제국 보드니아 역사를 이야기의 날줄로 삼았다. 여기에 주인공 유리핀 멤피스와 수많은 등장인물의 삶을 씨줄로 엮어 거대한 서사시를 촘촘하게 짜나갔다. 작가는 한없이 아름답다가, 성난 파도처럼 치솟다가, 극한의 상황까지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바다로 독자들을 풍덩 빠뜨렸다.
작가는 가상 왕국인 보드니아가 실재하는 것처럼 지리적인 설정이나 역사적인 배경을 정교하게 설정했다. 보드니아는 서쪽으로 북해를 접하고, 동쪽은 발트해와 연결되는 해상 강국이다. 하지만 처절한 영토권 분쟁과 전쟁 발발, 권력 간 암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실제 역사처럼 생생한 이 북해 연대기는 이야기 구성만으로도 작가의 스케일과 역량을 가늠케 한다. 작가는 그 시대 사회상과 생활상, 관습과 법률, 건축물과 범선, 가구와 의상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따져 그렸다. 만화의 다양한 배경 이미지를 구매하거나 재활용하는 요즘 같은 디지털 작업 환경에선 상상하기 힘든 극한의 수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