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을까
기원전 399년, 아테네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터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저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죽음의 연습이라는 주장을 보여주는 본보기인가? 그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그는 죽음이 몸의 죽음일 뿐, 영혼까지 죽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몸은 가변적이고 소멸하는 것이지만, 영혼은 스스로 움직이는 원리를 지닌 것이어서 변화에 휩쓸리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몸의 감옥에 갇혀 있던 영혼은 죽으면 원래 살던 이데아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법정 앞에서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일시적이고 사라질 몸을 위한 삶인가? 아니면 변치 않고 참된 아름다움을 지닌 영혼의 삶인가? 우리는 ‘삶이냐 죽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앞에 서 있다. 몸의 요구들에 얽매인 ‘그저 살아감’인가, 영혼의 진리를 위한 ‘좋은 삶’(훌륭하고 선한 삶인가?
그는 감옥에서 탈출하지도 않고, 즐거운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의연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제자들과 논쟁하고 담론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삶과 진리를 찾는다. 이러한 과정들이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사상을 품었고, 자신의 사상을 사회에 적용해나가는 실천 과정 또한 이성과 분별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사상과 탐구 정신은 동시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서양철학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행적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대신 플라톤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