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고전 연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예리한 사상가로 꼽히는 에릭 A. 해블록의 저서 『뮤즈, 글쓰기를 배우다』가 문학동네 인문라이브러리 열여덟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오래전 구술문화에 익숙했던 인류가 문자를 익히기 시작했을 때 인간의 의식이 어떤 식으로 달라졌는지, 또 이 새로운 소통 형식이 글의 내용과 의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문제를 다뤘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연구의 선구자로 월터 옹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해블록은 고대 그리스에서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바뀐 과정과 그것이 현대 서양 사상과 사고에 미친 영향을 토대로, 고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이 책은 해블록이 생전 마지막 펴낸 저서로, 그의 모든 연구를 집대성하고 동시에 확장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를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플라톤의 사상을 통해 미디어 혁명의 원류를 찾아낸 유명한 저서인 『플라톤 서설』 등 해블록의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문자문화에서 비롯되는 우리 자신의 편견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뮤즈, 글쓰기를 배우다』는 인간의 의사소통 역사에서 있었던 고비, 즉 그리스 구술성이 그리스 문자성으로 탈바꿈한 때를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하여 보여준다. 해블록에 의하면 우리 인류사에서 그리스 문학과 그리스 철학은 문자로 적힌 말이 최초로 빚어낸 쌍둥이에 해당하는 활동이다. 그는 이 두 가지가 최초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둘이 독특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리스 문자 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의 맥락 안에서 가장 잘 대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해블록은 ‘뮤즈’를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뮤즈는 호메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는 3세기 반이라는 세월 동안 지중해에 살면서 구술-문자 방정식에 관여하게 된 소수 민중의 목소리다.
구술 시대의 표상인 뮤즈는 문자 시대가 시작되면서 곧장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의 뒷방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