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별로 떠나는 기차여행
이 기차는 저승으로 가는 환승 기차다. 빨강방에서 만나는 유혹과 욕망들은 떨쳐내야 다음 방으로 갈 수 있다. 주황방은 약물에 취해 사는 이들이 모여 있다. 노랑방은 또 어떤가? 향락과 사치가 그들을 유혹한다. 이런 식으로 7가지 무지개방을 통과해야 그들은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주인공이 놓아주지 않은 아빠는 보라방에 갇혀 있다. 집착을 내려놓지 않아 생긴 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고 짓는 죄는 얼마나 많은가? 절제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초등학교 3-4학년은 세상에 대해 눈 뜨는 시기이다. 저학년 때 고분고분하던 아이들도 이 시기가 되면 반항을 하고 자기 주장을 펼친다. 이 동화는 부모님의 곁을 조금씩 떠나려는 어린이에게 문학이라는 옷을 입혀 철학적 사유를 하게 한다. 동화는 인간이 무심코 저지를 수 있는 만행을 조용히 타이르고 무절제한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계를 향해 용서를 구한다. 자라나는 세대가 현재의 삶에 충실할 때만이 지구별이 정화되며 그 다음 세상 또한 만개할 것이라는 인문학적인 성찰을 제시한다.
복숭아빛 햇살이 몰려오는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생기를 얻어 깨어난다. 깨어남과 잠듦 사이에서 우리는 무수한 꿈을 꾼다. 일어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꿈자리. 그 경계를 레일삼아 동화는 기찻길처럼 이어진다.
“죽는 건 환승하는 거야. 다른 기차를 타는 거니 슬퍼할 이유가 없어. 네가 아빠를 보내주지 않아 아빠는 무지개별에서 생기를 잃고 적응하지 못해. 이제 아빠를 놔 줘.”
저승사자 단오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주인공은 자기의 힘으로 기차에서 내린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너의 작은 욕심이 연못의 잉어를 죽게 했다고. 우주와 자연계의 기운이 하나라는 사실을 작가는 글속에 숨겨두었다.
이 동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평화롭던 일상이 어떤 사고로 흔들리게 되고 눈을 뜨면 당연하게 내일이 올 거라는 예측은 빗나간다. 내일은 당도했지만 아빠는 사라지고 없다.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