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1장 태실(胎室의 이해
1. 태실이란
1 고려와 조선의 태실
2 아기씨 태실과 가봉 태실의 규모
2. 태실의 조성 과정
1 가봉 태실의 조성 과정
2장 경기도 태실의 특징과 현황
1. 태실지로 경기도가 주목받은 이유
2. 경기도 태실의 석물 변화 과정
3. 경기도 태실의 현황과 보존 필요성
3장 경기도의 태실
1. 양평 제안대군 태실
2. 광주 태전동 성종 태실
3. 성종의 왕자·왕녀 태실
4. 광주 원당리 연산군 왕자 돈수 태실
5. 가평 중종대왕 태봉
6. 중종의 왕녀 태실
7. 선조의 왕자·왕녀 태실
8. 영조의 왕녀 태실
9. 포천 성동리 문조 태실
4장 태주를 알 수 없는 태실
1 시흥 무지내동 태봉
2 안산 고잔동 태실
3 연천 동막리 샘골 태실
4 포천 송우리 태봉
5 포천 금주리 태실
6 포천 주원리 군자동 태실
7 파주 축현리 태실
5장 서삼릉 태실의 이해
1. 서삼릉으로 태실이 옮겨진 이유는?
2. 서삼릉 태실의 태주와 태실지
마침 글
부록
참고문헌
조선 왕실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태를 수습해 길일을 받아 길지에 봉안하는 장태 문화를 태실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경기도에 소재하고 있는 태실을 중심으로, 현장과 잔존하고 있는 석물을 사료의 교차 분석을 통해 태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에 태실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성종의 왕자·왕녀 태실이 경기도에 11곳이 있다는 것을 고증했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전작인 《조선 왕실의 태실》에 이어 경기도의 태실을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으로, 전작에서 다루지 못했던 태실과 서삼릉 태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현재 상당수의 태실 유적이 분묘와 군사시설, 개발행위 등으로 훼손이 되었고, 그 안타까운 현장의 모습을 《경기도의 태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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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실제 세조 시기 태실 조성은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았는데, 정희왕후(貞熹王后의 태실 사례가 그렇다. 조선 초기 만해도 왕비의 태실이 조성되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왕비의 태실은 ▶영주 소헌왕후 태실 ▶홍천 정희왕후 태실 ▶예천 폐비윤씨 태실이 있다. 그런데 소헌왕후와 폐비윤씨의 태실에서는 가봉 태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정희왕후의 태실에서는 관련 흔적이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물론 정희왕후의 태실이 있다는 기록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정희왕후의 태실은 홍천 공작산에 있고, 『성종실록』의 교차 검증을 통해 정희왕후가 홍천의 공아(公衙에서 태어난 것이 확인된다. 다만 별도의 가봉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데다 태실지로 추정되는 수타사 뒷산과 덕치천 건너편 태능산에서도 가봉 태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소헌왕후의 태실을 가봉했던 전례가 있기에 세조 역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정희왕후 태실에 대한 가봉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희왕후의 태실에 대한 가봉 기록이 없는 것은 세조가 태실의 가봉에 대해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사례는 광릉(光陵의 조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세조는 자신의 능과 관련해 “죽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