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너르고 느린 경각警覺의 글밭에서-이섭
이미지의 힘
미술 속의 영화, 영화 속의 미술 / 미술과 영화 / 자크 모노리 회화의 영화적 효과 / 저공비행, 활강, 그리고 놀이 / 기억과 망각(메모 / 이미지의 힘
미술의 쓸모
전위前衛와 열등의식 / 미술과 사치 / 반성, 사고하는 미술인이길 / 미술 우상화偶像化의 함정 / 한국 미술비평의 현주소 / 전시회장―떠들썩해야 할 자리 / 미술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되는가 / 미술작품을 보는 눈 / 복제 미술품의 감상 / 이미지의 대량생산과 미술 / 고정관념의 반성 / 미술은 물건인가 / 미술작품과 글 / 환원주의적還元主義的 경향에 대한 한 반성 / 의사소통으로서의 미술 / 최소한의 윤리 / 국제화 시대와 민족문화 / ‘국제미술’이라는 유령 / 평화를 그리기 / 격변하는 사회의 미술의 한 양태 / 영어 못하면 미술가 아니다? / 시각문화연구에서 ‘민족적’이라는 것
전시장 안과 밖에서
공백空白과의 대화 / 절충주의와 학예회 / 「도시와 시각」전에 부쳐 / 우리 시대의 풍속도 / 영혼의 외상外傷을 드러낸 기호들 / 미술의 쓸모에 대한 의문 제기 / 싸늘한 실험미술의 화석 / 한 시대의 초상들 / 욕망하는 육체 / 만화는 살아 있다 / 담담한 경지 / 민정기의 산수, 화훼를 음미하기 위한 몇 가지 마음가짐 / 음울한 시대의 알레고리 / 민정기의 대폭산수 / 빛, 공간, 길: 민정기의 새로운 풍경화 / 상상력의 자장磁場 /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기 / 기호의 무위無爲: 오수환의 작업에 대한 몇몇 생각 / 여운의 검은 소묘 / 재현, 수사학, 서사 / 황세준의 도시풍경 / 클로즈업의 미학 / 이제의 유화
사진의 자리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 / 떠도는 섬 / 춤과 사진이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 희망과 안타까움 / 상투성과 피상성을 넘어 / 스트레이트 포토, 리얼리즘, 다큐멘터리 / 정범태의 발견 / 기록, 예술, 역사
영화, 시대유감
영상시대와 문학 / 영화적 개인 / 갈수록 빨라지는 영화 /
음울한 시대의 알레고리
최민의 글쓰기는 자신의 학업 및 직책 변화와 시대적 여건에 따라 대략 네 시기로 나뉘는데, 석사 졸업 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1972?1983, 파리 유학 시기 및 귀국 직후(1984?1994,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 및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1995?2010, 퇴임 이후부터 말년까지(2011?2018이다. 물론 시기별로 명확하게 구획되는 양상은 아니지만 전체를 조망하며 읽어 나가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한 구분이다.
첫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 말, 대학원 미학과 졸업 후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학생중앙』에 유럽 미술의 거장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연재하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번역하는 등, 입문적 성격의 서양미술 관련 글을 쓰고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는 당시 국내에 미술애호가들이 생기고 미술사를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의 욕구가 일어나던 때였기에, 잡지나 단행본 출판 환경에서 여러모로 필요했던 글쓰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민의 생각이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미술비평문들이다. 1970?1980년대 한국은 군사독재정권 아래 압축적 경제성장을 거치며 정치사회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냈다. 혈기 넘치는 이삼십대였던 그에게 이러한 현실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고민거리를 안겼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때의 글에는 예술지상주의, 미술 우상화, 속물주의, 절충주의, 환원주의를 경계하고, 서구미술과 전위예술을 향한 우리 예술가들의 열등의식, 비평가의 자세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는 1979년 시작된 진보적 미술운동 단체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이었던 그의 활동 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1977년에 쓴 「전위와 열등의식」에서 그는 서구의 전위미술이 한국 작가들의 현실에서 ‘겉치레만의 모방’이 되면서 보이는 기형적인 폐단을 비판하며, “전위는 그 논리상 그것을 전위일 수 있게 하는 시대적, 사회적 필연성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82년에 처음 발표하고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