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4
1. 해뜨는 나라_한국
경주 18
낙화암 오르며 21
칠백의총 23
눈 내리는 온정리 25
반구대 28
고창 지석묘 30
2. 타클라마칸 건너며_중국 서역
진시황릉에 올라 34
우리 사는 곳 38
둔황석굴 40
투루판에서 42
누란 미녀 1 44
누란 미녀 2 46
쿠처에서 48
타클라마칸 건너며 50
민펑에서 54
허톈에서 56
예청에서 58
카스에서 60
카스 지나며 62
아아, 파미르 64
3. 카라코람 시편_파키스탄
쿤자랍 패스 68
투포단 70
훈자에서 72
가니쉬 마을 76
자글로트 78
베샴 지나며 80
잠자는 악공 82
라호르성 85
4. 고비를 넘어서_몽골
간단 사원에서 88
강링을 불어보리 90
오르콘 강가에서 94
5. 옴 마니 반메 훔_티베트
샹그릴라 98
호도협 102
옥룡설산 106
차마고도 108
포탈라궁에서 112
남초호에서 114
캄발라 패스에서 116
라싸 가는 길에 120
히말라야를 넘다가 122
6. 본 것이 본 것이 아니고_네팔
스와얌부나트 스투파 126
신(神 128
페와호에서 131
푼힐의 일출을 보며 134
7. 그 슬픈 사랑의 시 한 편_인도
디야를 띄우며 138
녹야원에서 140
타지마할 144
하와마할 146
8. 톈산에 올라_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톈산에 올라 150
타쉬라바트에서의 하룻밤 152
오뚝 마을 지나며 154
이식쿨 호수에서 156
성산(聖山 술라이만 158
탈라스 강가에 앉아 162
카레이스키 김치 166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에서 170
9. 아프라시압 폐허에서_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압 언덕에 올라 174
샤히진다 대 영묘 178
비비하눔 모스크 182
샤흐리삽스
지금 창밖엔 눈이 내리고, 휴전선 철책에도 눈이 내리고
마하연(摩訶衍, 만폭동(萬瀑洞, 장안사(長安寺 빈 뜰에도 눈이 내리고
우리는 지금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구나. 만물상(萬物相도
구룡연(九龍淵도 보지 못하고 옛 장전포(長箭浦
온정리 술집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아득히 눈시울만 붉히고 있다.
― 〈눈 내리는 온정리〉 중에서
오세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윤리나 도덕, 문화나 이념의 혼종성(hybridity이다. 그 어떤 윤리, 도덕, 이념도 가치와 사유의 무균상태,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 어떤 문화도 주체의 철저한 고립과 분리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든 문화는 혼종, 뒤섞임, 스며듦에 노출되어 있으며, 광대한 실크로드라는 공간에 흩뿌려진 의미소들은 문화가 강력한 대타자(the Other의 규범에 의해 일괄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마구 허물면서 장구한 세월과 끝없는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를 섞는다. 이 섞임과 침투와 스밈, 즉 혼종성의 증거가 실크로드라는 공간 전역에 흩뿌려져 있다.
머리카락 간질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면
카라쿰사막을 건너, 톈산산맥을 넘어 신라 땅 경주까지
황금, 융단을 싣고 오가던 대상들의 낙타 방울 소리가 들린다
아,
노을이 비끼는 이스파한,
시오 세 폴 다리 아치에 포근히 안겨 자얀데 푸른 수면을 나르는 물새들을 바라다보면
옛 신라 여인들의
가녀린 귓불에서 반짝거리던 유리구슬, 그 속에 비치는 하늘이 보인다. 그 청자 빛 하늘이……,
―〈이스파한〉 중에서
지리적,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국경들은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을 위반하는 폭력의 범주들이다. 유목민처럼 실크로드의 모든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시인에게 이와 같은 경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무애자재”의 삶을 사는 시인에게 하찮은 장애물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시집이 하는 일은, 크게 말해 경계를 부수고 문화의 혼종성을 읽어내며 세상이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