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장 | 1960년대 북한의 대남공작목표와 인프라
북한 대남공작 관련 법령의 성격
박헌영 숙청이 북한 대남공작에 미친 영향
북한 대남공작기구 대명사 ‘3호 청사’
대남연락부의 4·19 정세 오판과 김일성의 힐책
북한 3호 청사의 5·16 예측 실패
연락부 내 공화당 공작과 신편
김일성의 3대 혁명역량 강화론
김형욱 부장 시대 북한 대남공작 개관
김중린과 어윤갑의 김일성에 대한 충성 경쟁
대남연락부의 5·16 주체 이석제 포섭 시도
2장 | 북한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방해 공작
박정희 정부의 반공태세 재정비
중앙정보부의 한일 국교 정상화 비밀교섭
세계조류에 적응하려는 결단
조총련의 한일회담 방해 책동
김재규와 이만섭의 6·3 사태 수습책
미 CIA 한국지부장의 김종필 2차 외유 주선
6·3 사태 배후 인민혁명당
3장 | 대남연락부장 출신 박일영의 동백림 공작
동백림 사건은 조작인가?
북한에 포섭된 조선일보 서독 특파원
북한 스파이망을 탈출한 임석진의 공포
동백림 북한대사는 대남연락부장 출신 공작전문가
자수자 임석진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관용
김형욱의 수사 단서 왜곡
중정 이용택 과장에게 떨어진 대통령 특명
사상 최초 해외 북한스파이망 국내유인 공작
김형욱의 저돌성과 예리함
회유하되 불응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 것
황급히 달아난 북한 스파이들
북한 대남사업총국의 역공작
청와대 경호실장 비서로 잠입한 북한 여간첩
북한과 내통한 주서독대사 최덕신
최덕신 처리 문제로 고심한 박정희
4장 | 중앙정보부의 불완전한 승리
조작시비에 대한 이용택의 반론
서독의 반발과 중정의 외무부 대응 전폭 지지
강제납치는 없었다
서독과 한국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승리
조국을 배신한 자들에 대한 김형욱의 비판
과잉수사에 대한 아쉬움
공포와 강제만이 꽉 찬 사회에 대한 환멸
대남사업총국장 이효순의 쇼크와 대남공작 중단
이효순 대남사업총국장 체제의 와해
책 속으로
냉전시대 북한의 대남공작은 박헌영이 주도하던 시기, 김일성이 독점하던 시기, 김정일이 장악한 시기로 구분된다. 김일성이 대남공작을 독점적으로 수행한 시기는 1960년대 10여 년이다.
김일성은 6·25 전쟁 후 박헌영과 남로당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함으로써 공작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해방 후부터 6·25 전쟁 때까지는 김일성도 독자적인 대남라인을 구축하고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박헌영이 대남공작을 주도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끝나고 김일성이 박헌영을 비롯 이승엽, 이강국 등 남로당 지도부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 숙청함으로써 1950년대 말에 이르면 박헌영 세력이 대남공작 노선에서 완전히 밀려난다.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대남공작 부문에서도 김일성 독점 시대가 열린 것이다.
p. 5
그렇게 해서 1960년대는 강 대 강의 대결이 맞부딪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대가 됐다.
그 전쟁의 최일선에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북한의 대남사업총국이 있었다. 중앙정보부를 대표하는 김형욱과 대남사업총국을 대표하는 이효순, 허봉학의 싸움이었다. 전선이 따로 없었던 박정희와 김일성의 간접전쟁 시대였다.
p. 6
북한의 대남정책 관련 법규는 우리의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 안보형사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법원은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나, 동시에 남북한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고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로 북한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통해 적화통일 노선을 명문화하고, 이에 변경을 가할 징후를 보이지 않는 점을 들고 있다(대법원, 2008. 4. 17..
그러므로 북한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더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변화를 보이고 그에 따라 북한 법률이 정비되지 않는 한, 국가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 안보형사법의 규범력이 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