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외교’라는 무기로 독립운동을 펼친
조소앙 「빠리의 독립군」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하는 ’삼균주의‘를 주창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조소앙 선생의 독립 운동의 행적은 국내에 비교적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빠리의 독립군」은 그중에서도 비교적으로 평가가 되지 않았던 유럽에서의 외교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1919년 5월 대한민국 독립군의 일원으로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김성, 이성민, 윤도훈, 장육삼, 관기찬 등의 수많은 지원군과 함께 파리위원부 활동을 하게 됩니다.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임된 김규식 선생과 함께 「독립공고서」를 강화회의에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에게 한국 문제를 상정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일본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열강들의 한국 문제에 대한 외면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 한국 독립의 승인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빠리의 독립군」에서는 100년 전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영국까지 흘러들어온 한인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송환될 뻔한 것을 영국 정부를 설득해 프랑스로 이주시킨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9개월 남짓의 짧은 파리에서의 활동은 조소앙 선생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틔게 해 준 의미 있는 나날이었습니다. 더불어 이 시간 동안 일생의 목표였던 삼균 사상을 완성하는 데 크나큰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조소앙 선생을 비롯한 「빠리의 독립군」 속의 수많은 지원군들, 그들은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군이었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