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를 지키는 것이 독립의 최우선이다
이명하 「반역의 산하」
이명하는 1878년 경기도 광주군 궁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양반계층이었으며, 이러한 집안의 전통과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기를 발휘한 선생은 일찍부터 면학에 힘썼고, 그러는 가운데 전통적인 선비정신을 수양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하는 1919년 만주의 유하현 삼원보 서구 대화사에 본부를 두는 대한독립단을 창단하였고, 의병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건너오는 많은 청년들을 받아들여 남만주 제1사단이라는 무장조직을 갖추었습니다. 이들은 수시로 자신들이 주둔하는 곳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한국 영내로 들어가 일본 군경의 주재소를 습격하고 친일분자들을 처단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이명하는 같은 민족으로서 변절자를 가장 경멸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내부의 적이라 불리는 밀정으로 인해 많은 독립군들이 희생되던 때였습니다.
한국독립군이 급속히 성장하자 일제는 병력을 동원해 멋대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와 동만주와 남만주 지역에서 대토벌을 진행했습니다. 일본군의 토벌작전은 이들 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을 거의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동만주 지역에 있던 독립군부대는 러시아지역으로 넘어가 재기를 도모했으나, 남만주에 있던 많은 한국독립군 부대와 민단 등은 일본군에게 토벌되어 분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보합단으로 재결성한 독립운동조직은 대개 2·3명이 1조가 되어 권총 1정씩을 휴대하고 활동을 하였고 결국 근거지가 발각되자 그들은 적을 피하기 위해 2개의 대열로 나뉘어 타지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어렵게 활동을 이어오던 1921년 안둥현 삼도구만에 있는 중국인의 집에서 머물던 중 평북 제3부 일본경찰대 30여 명의 습격을 받아 교전하다가 안용봉, 박완식, 안중석, 정인복, 백학원, 김근배 등 동숙하던 일행 15명과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조국을 위한 살신성인의 장렬하고도 의로운 순국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현재 2019년 판교에 있는 대왕게임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