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부_통사: 전통의 성숙과 새로운 시대로의 항해
(14~19세기 전반
1장 14세기 동아시아의 정치 변동
왕조교체, 정권교체의 파도
원에서 명으로|강남의 경제력과 북경 천도|조선 왕조와 무로마치 막부
주자학 이념에 기반한 국가체제
주자학의 새로움|과거 관료제와 사대부|한국과 일본의 주자학 수용과 비수용
동아시아 국제 교역 체제
조공 체제의 재확립|정화의 남해 원정|북방 지역의 동정
류큐 왕국의 성립과 번영
2장 생산·생활 혁명
집약도작의 보급
동아시아 도작의 특징|중국의 집약도작 확립 과정|한국과 일본의 집약도작의 길
생활혁명과 문화교류의 양상
옷감 혁명|전통적 생활양식의 성립|문화교류의 여러 양상
3장 16세기 유동하는 동아시아
유럽 세력의 등장과 은의 비등
조선과 일본의 은|포르투갈의 동아시아 무역 참여|아메리카 대륙의 은과 스페인
동아시아 사회의 유동화
16세기 명의 화폐경제와 양명학|조선 사회의 계층화 현상|일본의 센고쿠 시대
도요토미 정권의 조선 침략과 동아시아
왜구와 도요토미 정권|임진·정유왜란=분로쿠·게이초의 역=만력조선역
동아시아의 구조 변동
4장 17세기 해금의 시대로
화이변태
만주족의 대두|명·청 교체와 동아시아의 변동|화기와 동아시아 대변동
화이변태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체제
국가 틀의 강화|국경의 획정|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
경제적 아우타르키
청의 무역 체제|청의 조공 체제|조일 국교 회복과 조선통신사
도쿠가와 정권의 네 개의 창구|자급자족적 경제 체제|문화적 교류의 심화
5장 전통사회의 성숙
사대부, 양반, 무사
사대부와 양반|도쿠가와 일본의 무사|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특질
종족, 문중, 이에
부계 혈연 원리의 강화|가족·친족 결합의 확산
도시와 농촌
인구 동태|촌락의 변모|도시의 발전|화폐제도와 화폐경제의 침투
새로운 사상의 영위와 문화 기반의 확대
주자학의 지배와 그에 대한 비판|천주교와 서학의 영향
새로운 사상 조류와 문제점|문화기반의
일국사를 넘어선 역사읽기, 중·일 이질론과 한국사의 전략적 위치
현재 동아시아 각국에 공통되는 ‘국사’라는 강고한 틀이 있다. 곧 태고 이래로 중국사, 한국사, 일본사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통사로 서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동아시아를 총체로서 파악하는 역사연구가 부진했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중·일 이질론’이다. 이는 봉건제론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탈아론에서 기인한 것인데 저자는 일본 봉건제론이 러일 전쟁기에 나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한국학계의 이른바 ‘내재적발전론’이 내재적 요인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한국사의 전개를 동아시아 세계와의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련을 중시하는 것 자체를 타율성론이나 정체론과 동일시하는 풍조가 강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러한 국수화, 쇄국화 경향이 그 배경에 서구의 발전모델을 따르는 데 있다며 이제는 서구모델과 일국사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상의 정립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습관이 오래되면 마침내 천성이 된다(習與性成’고 하듯이 50여년 한국사 연구를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의 특징을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토로하는 미야지마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양자의 비교에서는 이질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에도 이 둘의 중간에 한국을 놓고 보면 양자가 그 정도로 떨어져 있지는 않은 현상들이(예를 들어 신분제, 마을의 양태 등 많은 것처럼 한국사 연구는 한중일의 이질론을 비판할 때 전략적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중일 비교 통사』는 역사연구와 서술에서 비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중일의 정치 이노베이션,
과거관료제와 사대부, 주자학의 탄생이 불가분으로 연결된 정치 혁신
『한중일 비교 통사』는 처음으로 동아시아 세계를 일체로 파악한 독보적인 역사책이다. 14세기 몽골제국의 붕괴와 17세기의 명·청 교체라는 동아시아 규모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