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윤봉길 4.29」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맞아 성대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군중 속에 몸을 숨긴 윤봉길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품 안에 숨겨둔 폭탄을 손에 꼭 쥔 채 말입니다. 그는 저격용 폭탄과 자결용 폭탄 2개를 가져갔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투지가 얼마나 대단하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결국 그는 일본 주요 인물들에게 중상을 입혔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25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였던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윤봉길의 의거를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상하이 의거에서 보여준 그의 기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25세 청년 윤봉길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한목숨을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비범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행동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미 마음속에 폭탄을 지니고 고향을 떠나왔다고도 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그의 가족들은 윤봉길에게 ‘집은 걱정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흔들림 없이 옳게 생각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식솔들 역시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했던 것입니다. 1932년 4월 27일. 태극기 앞에선 윤봉길은 왼손엔 수류탄을, 오른손엔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마지막 사진을 남깁니다. 그의 얼굴엔 두려운 기색 없이 초연함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을 위해 망설임 없이 용감한 투사가 되었던 윤봉길.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입니다. 4·29는 그가 대한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