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미국과 소련이 조선에서 원한 것
1부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성립
1946년 2월 1~11일
1946. 2. 1. 대표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않는 ‘대표민주의원’
1946. 2. 7. 민생을 엉망으로 만든 미군정
1946. 2. 8. ‘쌀 소동’ 속에서도 한민당은 ‘딴민당’
1946. 2. 9. 조선인의 첫 ‘정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6. 2. 10. 한 가마 150원? 차라리 떡 해먹겠다
1946. 2. 11. 남한 경찰, 식민지시대보다 더 나빠졌다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민주의원, 무엇이 잘못되었나?
2부 해방공간의 미ㆍ소 대결, 극심한 좌우 대립
1946년 2월 15~25일
1946. 2. 15. 민주의원과 민전, 좌우 대결의 초점이 되다
1946. 2. 16. 냉전의 씨앗,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에서 나타나다
1946. 2. 17. 38선에서 막힌 독립동맹의 역할
1946. 2. 18. 민주의원, ‘을사5적(賊’ 못지않은 ‘병술23적(賊’
1946. 2. 21. 토지개혁, 좌익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1946. 2. 22. ‘냉전의 아버지’ 조지 케넌
1946. 2. 23. 소련의 ‘적화 야욕’, 정말 어떤 것이었나?
1946. 2. 24. 군정청의 전염병 후안무치증
1946. 2. 25. 속이 빤했던 미군정의 정당 규제 정책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국민당이 왜 한민당을 따라가나?
ㆍ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6년 2월
3부 민심을 읽지 못한 미군정 정책
1946년 3월 1~11일
1946. 3. 1. 분열의 외길로 나아가는 우익 진영
1946. 3. 2. “우리 편만 되세요. 박흥식이라도 지켜줍니다”
1946. 3. 4. 대미 예속을 향한 ‘원조경제’의 길
1946. 3. 7. 민족주의를 적대시한 경찰 2인자 장택상
1946. 3. 8. “소련 영화 상영 금지”
1946. 3. 9. 일본ㆍ미국, 참 골치 아픈 이웃들 골라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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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미국과 소련이 조선에서 원한 것은?”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1946년 2월 초부터 1946년 4월 말까지 시기를 다룬 『해방일기 3』 “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이 출간되었다. 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와 2권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에 이어 세 번째 책이다.
일본 항복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북 간의 정치 풍토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북은 조선인의 자치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었고, 1946년 3월 토지개혁 실시를 ...
“미국과 소련이 조선에서 원한 것은?”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1946년 2월 초부터 1946년 4월 말까지 시기를 다룬 『해방일기 3』 “소련군의 해방과 미군의 해방”이 출간되었다. 1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와 2권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에 이어 세 번째 책이다.
일본 항복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북 간의 정치 풍토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북은 조선인의 자치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었고, 1946년 3월 토지개혁 실시를 계기로 민심을 수렴하며 순조로운 발전을 시작했다. 반면 이남은 1946년 2월 좌익 중심의 통일전선인 민주주의민족전선과 우익 결집체인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이 만들어지면서 좌우 정치세력의 분열이 깊어져 갔다.
그 배경에는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듯이 소련군과 미군의 점령 정책의 차이가 있었다. 저자는 “소련군은 ‘점령’의 의미를 최소한으로 해석해서 주민의 자치 노력을 도우려 했고, 미군은 최대한으로 해석해서 자치 노력을 막으려 했다. 소련군의 점령은 ‘해방’이었고, 미군의 점령은 ‘지배’였다.”라고 단언한다. 과연 해방과 지배의 차이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미국과 소련이 조선에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지정학적 조건과 새로이 발굴된 자료를 포함하여 해석을 가한다.
3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