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은 참고 견디는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고. 갇혀 있는 것을 해방하는 것이고, 필요 없는 고리를 끊는 것이다.
불교 공부를 잘못 알아서 반대로 간다면 힘은 많이 들었으나 성과는 없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니 어떻게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큰스님들께 배우는 것이 참 중요하다.
글씨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서암 선생은 이야기한다.
처음 30분을 잘 배우면 평생 제대로 쓰고, 그것을 배우지 못하면 30년을 써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처음의 30분 동안 배워야 하는 것이 한 획에 대한 안목이라고 한다.
바로 이해가 되었다.
길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면 느리든 빠르든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지 않으면 무한대의 방향에서 헤매야 하니 30년이 아니라 300년이라 하더라도 모자랄 것이다.
불교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서암 선생은 사경은 매우 재미있는 수행이라고 한다.
운필법을 제대로 지켜서 쓴 글을 따라 쓰면 붓을 놀리는 재미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마치 스키를 타듯 그렇게 재미있고 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암 선생의 이야기를 간단히 듣고 다시 쓰는 금강경을 펼쳐 보면 일단 큰 감동이 밀려온다.
아! 글씨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구나.
책으로 만들어진 필사본은 기계서체와는 그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작품으로 걸린 글씨와도 또 다른 느낌이다. 책으로 느껴지는 필사본의 맛이 참 멋지다.
왜 그동안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싶다.
명품은 누구나 쉽게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듯 명필은 누구나 좋은 글씨로 알아 본다는 것을 느꼈다.
칼라 붓펜으로 따라 써 보면 봄날 꽃구경하듯, 가을날 단풍 구경하듯 즐거울 것이라는 서암 선생의 이야기는 실제 몇 장을 써 보면서 금방 느낄 수 있다.
글씨를 제대로 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무엇을 하든 한 가지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