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기억의 지구사를 향하여
Ⅰ. 기억
민족주의의 지구사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형성
내면적 지구화와 기억의 헤게모니
역사 서사와 기억 문화
길 찾기
Ⅱ. 계보
도덕적 원죄와 희생의 그늘
당당함과 부끄러움 사이
예드바브네 학살과 카인의 후예
원거리 민족주의
Ⅲ. 승화
죽음의 민주화와 사자의 기억
숭고한 희생자와 순교의 국민화
시민종교와 전사자 숭배
탈영병 기념비와 대항 기억
Ⅳ. 지구화
탈냉전과 기억의 지구화
일본군 ‘위안부’와 반인륜적 범죄
검은 대서양과 홀로코스트
68혁명과 기억의 연대
Ⅴ. 국민화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의 기억 전쟁
동아시아의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국민화
Ⅵ. 탈역사화
패전의 우울과 희생자의식
공습의 기억과 원리적 평화주의
실향민·전쟁포로와 가해의 망각
희생의 기억과 역사의 면죄부
Ⅶ. 과잉역사화
집합적 무죄와 예드바브네
B·C급 전범과 조선 화교 포그롬
세습적 희생자의식과 이스라엘
Ⅷ. 병치
나가사키의 성자와 아우슈비츠의 성인
‘우라카미 홀로코스트’와 사랑의 기적
반서구주의와 반유대주의
풀뿌리 기억과 순교의 문화
Ⅸ. 용서
용서의 폭력성과 가톨릭 기억 정치
폴란드 주교단 편지와 화해의 메타 윤리
독일 주교단의 답서와 수직적 화해
가톨릭 형제애와 동아시아 평화
Ⅹ. 부정
부정론, 제노사이드의 마지막 단계
부정론의 스펙트럼과 담론적 지형
국경을 넘는 부정론
증언의 진정성과 문서의 사실성
?. 연대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양과 동양의 불평등한 학문적 분업 체제를 깬
임지현 교수의 역작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등 민족주의 정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개념을 잇달아 제시하며 세계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은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그는 지구적 기억 공간을 떠돌면서 인문사회과학의 설득력은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삶의 경험에 뿌리박은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 경험을 추상화할 수 있는 이론적 힘에 있음을 깨달았다. ‘서양’이 이론을 제시하고 ‘동양’은 경험자료를 제공하는 불평등한 학문적 분업 체제가 아닌, 지구적 근대의 주변부인 동유럽과 동아시아의 경험에 천착한 독자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대중독재’로 해외 학계의 민족주의 연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21세기 민족주의를 적확하게 포착하며 기억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영어판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1. 누가 ‘숭고한 희생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희생의 기억
오랫동안 폴란드와 독일 등을 넘나들며 연구해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으로 먼저 폴란드의 기억 전쟁을 살펴본다. 1987년 한 문학평론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끌려가는 유대인을 방관했던 폴란드인의 행동을 반성하는 에세이를 발표하자, 에세이에 공감하는 목소리와 나치 독일에 끈질기게 항거했던 폴란드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항변이 팽팽하게 맞부딪혔다. 폴란드의 공식 기억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었던 풀뿌리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왔을 때 나타난 격렬한 반응은 그만큼 희생자라는 자리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를 드러냈다. 폴란드인의 죄의식을 건드린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폴란드인 역사학자가 ‘예드바브네 학살’을 다룬 책 《이웃들》을 발표하면서 폴란드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1941년 7월 폴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