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숭배가 총보다 탁월한 이유
디쾨터에 따르면, 독재자는 원래 나약한 존재였다. 애초부터 대중의 지지가 있었다면, 굳이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취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국민들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정적이었다. 실제로 무솔리니는 여러 파시스트 지도자 중 확실하게 자리 잡은 한 명의 지도자에 불과했고(1922년에는 군 지도부 내에서 반란에 직면했다, 스탈린은 레닌 사망 2년 전에 운 좋게 서기장에 올랐지만, 당의 실권자 트로츠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1945년 당시 서른세 살의 김일성은 소련이 내세운 지도자였고, 그는 지하 운동에서 자신보다 훨씬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겨우 잡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독재자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 <교묘한 속임수>, <각개 격파>로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지만, 결국에는 개인숭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숭배는 측근과 반대파 모두를 똑같이 약화시켰다. 개인숭배의 목적은 설득이 아니었다. 혼란을 주고, 상식을 파괴하고, 개인을 고립시키고,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기 위함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독재자를 칭송하게 강요함으로써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모두가 거짓을 말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공모자를 찾아서 쿠데타를 일으키기가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
개인숭배의 성공 공식
개인숭배는 대개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 첫째, 독재자는 권력을 얻은 뒤 언론을 장악했다. 로마 진군 직후 무솔리니는 최우선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신문사들의 인쇄기부터 파괴했다. 그는 호의적인 언론에게는 자금을 대주고, 검열과 보도 통제를 강화해서 반정부적인 언론을 무력화했다. 이 과정은 히틀러나 다른 공산권 전체주의 국가도 비슷하게 진행됐다. 정권의 나팔수가 된 언론은 영웅의 등장을 알리고, 미화하고, 점점 뻔뻔한 찬양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둘째,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영웅 신